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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무의미의 소비

비평쟁이 괴리 2013. 10. 5. 11:40

마약의 소비는 의미 결여를 소비하는 것이다.” 우연히 틀은 TV에 노사회학자 알렝 투렌느(Alain Touraine)가 나와서 한 말이다. France 2의 금요일 문화 프로그램 오늘 저녁 아니면 못 봐요) Ce soir (ou Jamais)에서이다.

이렇게 간결하게 핵심을 짚기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가 덧붙여야 할 말이 있다면, 의미 결여가 소비되는 까닭은 의미결여가 의미로서 소비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리라. 그러지 않으면 그게 사용되고 소비될 일이 없을 것이니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의미결여를 의미로서 소비하는 게 마약만은 아니라는 데에 눈뜨게 된다. 그 노인장이 그 말 앞에 우리는 오늘 의미를 주는 것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무관심하고 절대적으로 침묵하고 있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듯이, 그건 마약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이 발언이 바로 의미결여의 소비가 요란하게 춤추는 장소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발언도 역시 의미 결여를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어쩌면 바로 이 무의미가 소비되는 자리 안에서 무의미를 의미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차원이 열릴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전자와 후자는 아주 다른 것인데, 같은 근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양태가 때로는 너무나 흡사하게 나타나는 것이고 아니 어쩌면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두 차원을 어떻게 섬세히 분별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전자의 원반을 후자의 회전판에 올려 놓을 것인가? 대개는 후자인 척 하면서 전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희희낙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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