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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의 무서운 말

비평쟁이 괴리 2012. 1. 29. 07:30


마가진 리테레르 Magazine littéraire최근 호를 뒤적거리다 보니,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웨스턴 삼부작경계의 삼부작 The Border Trilogy (세 작품의 제목은 All the Pretty Horses, the Crossing, Cities of the Plain이라고 한다. Amazon에 들어가 Everyman's Library에서 1999년 출판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 불어로 번역되어 서평이 실려 있었다. 불어 제목은 La Trilogie des confins(Éditions de l’Olivier, 2012).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서평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소설에서 발췌해 소개하고 있는 짧은 대목에서이다. 그대로 옮겨 본다.

 

그는 늑대는 무엇보다도 명령에 따르는 피조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늑대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는 죽음이 내리는 명령 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간이 신의 피를 마신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인간은 물론 진지하려고 하긴 하지만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모른다고 했다. 우주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의례 사이에 있는 것이다.”(횡단The Crossing중에서)

 

이 무시무시한, 자기를 향한 독설이야말로 그만의 것이리라. 더 로드The Road의 황당무계한 설정과 선한 사람에 대한 집요한 갈망의 진실이 여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 진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건, 우주는 인간의 행위와 인간의 의례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짧은 대목을 읽으면서도 인간인 나는 신의 피를 마신다는 죄악이 아니라, 우주에 닿지 못한다는 비극에 전율한다. 탐욕은 무지이고, 무지는 탐욕의 형식으로 한없이 펼쳐진다!(201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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