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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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울 뿐이에요

비평쟁이 괴리 2025. 3. 17. 08:51

2005년 김환태평론상 수상소감이다.

현대에서의 문학상의 특징은 그것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주는 훈장도 아니고 사장이 주는 포상도 아닙니다. 문학상은 문학과 관련된 어떤 사설 단체가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의뢰해 역시 문학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지요. 그 상의 발생기원과 그것이 노리는 효과에 대해서는 문학상의 역사와 기능이라는 글에서 졸견을 밝힌 적이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그 글에서 빠진 얘기를 좀 더 덧붙여 보겠습니다. 요컨대 문학상의 유통체계는 원환적으로 움직이는 비행접시를 닮았습니다. 그 점에서는 문학하는 일과 문학상을 주고받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언어의 진흙을 수평으로 회전시키면서 문학이라는 항아리가 빚어지기를 꿈꿉니다. 수평적 움직임은 수직의 욕망을 안감으로 덧대고 있지요. 이 수평과 수직의 절묘한 비율이 문학성의 황금비라 할 수 있는데 다만 문학상은 문학 일반에 비해 수직에 대한 조급함이라는 신경증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문학이 빚는 것이 항아리인 데 비해 문학상은 어떤 돋을 장식을 만드는 것인데 그것은 모든 관()들이 돋을 장식인 것과 마찬가지고 그 관들에 붙은 것들이 또한 돋을 장식인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은 이미 수평으로 돋음인데 문학상은 그 수평-돋음의 모순형용을 불안해하는 것이랍니다.

그런 불안과 욕망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그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 양태에 속하는 것이지요. 원래 미물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은 희한하게도 신과 같이 되려는 욕망을 내장하였습니다. 그 욕망이 내장된 사건은 인간에게는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축복인 것은 인간이 그 이후로 세상을 지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저주인 것은 그 깨달음의 연장선상에서 인간은 결코 신과 같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주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그것이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저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스스로 벌충하려는 저주스런 삶을 되풀이하게끔 하였습니다. 그런 욕망을 부의 획득이라거나 정치적 집권 같은 다른 대상으로 대체하지 않고, 그 저주 자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활동이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활동에도 대체의 유혹이 언제나 상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그가 받은 축복이자 저주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인간은 거듭 대상을 대체하기보다 존재를 대체하는 일종의 가면무도회를 수시로 열게 되지요. 문학상은 그런 가면무도회의 일종입니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인간의 영원한 촐랑거림으로 비치겠지요. 신은 인간이 가면을 쓴다는 조건 하에 그 촐랑거림을 슬그머니 용인하실 것입니다. 그 가면은 인간의 영원한 결여의 표지, 아니 차라리 영원한 비천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책 문학이라는 것의 욕망은 부족한 게 많은 책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부족할 수밖에 없어서 부족함을 형식적 특징으로 삼은 책입니다. 상을 주신 분들은 그 부족할 수밖에 없음의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어떤 공감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고마워해야 할 것은 바로 그 공감일 터입니다.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부족함의 윤리학에 대해 좀 더 천착해야 할 것입니다. (2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