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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자료 처리 변경으로 보낸 한 달

비평쟁이 괴리 2020. 10. 4. 16:50

 

내 모든 사무를 관리하는 Microsoft Access에 기능 추가가 필요해서 그 일에 끙끙대느라고 한달 여를 다 보냈다. 이번에 새로 배우게 된 것은 폴더와 파일 문제를 처리하는 File System ObjectFunction의 리턴 값을 할당하는 여러가지 방법이다.

 

데이터베이스에 갇혀 사는 사람은 고문서(archives)에 묻혀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료에 몰두하는 바람에 세상살이며 주변의 일에 거의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탐구하는 자료가 어떻게 유통될 수 있는지에 대한 궁리는 싹트기가 힘들다. 어떻게 하면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을까가 독점적인 관심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일 입출력 같은 건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할 일로 미뤄두기 십상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베이스 혹은 고문서에 매몰된 사람은 자료의 내적 분류를 구축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 때문에 외적 관련을 잊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의 창시자 쯤으로 여겨지는 에드워드 홀은 민속학 쪽에서 읽은 다음 구절을 인용하고는 풀이를 하고 있는데, 새겨둘 만하다.

 

“존재하는 막대한 수의 생물을 다룰 때 우리는 분류과정과 그것이 함의하는 평가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 생물에 관한 정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달리 말하자면 현대의 분류방법에 의해 제공되는 수많은 정보는 유용하고 이해가능한 패턴으로 통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점은 맥락도가 낮은 정보의 전형적인 예이다. (Edward Hall, 『문화를 넘어서』, 최효선 옮김, 한길사, 2000(1976), p.185.)

 

이 풀이를 다시 요약해 풀이하면, 내적 분류체계를 이해가능한 패턴으로 재구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료가 넓은 소통망에 연결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패턴을 구성한다는 것은 내적 분류를 외적 연관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두 작업은 얼핏 비슷한 것 같지만 아주 다른 것이다. 양태만 비슷할 뿐, 본성도 다르고 지향도 다르다.

내 데이터 작업도 이제는 서서히 유통의 물관을 만드는 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요즘 부쩍 갖게 되었다. 그 결과로 위의 알고리즘 공부를 한 것이다. 덕분에 오래전부터 정의로만 알고 있었던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처리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단순히 프로그래밍의 역사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인류의 정신사적 지평의 페이지 넘김에 해당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상'을 지향한다는 것 혹은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한편으론 모듈화가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타자로 인식하는 최적의 장치를 개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에(1990년대 중엽이었던가? 프랑스에 잠깐 들렸을 때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언어학도와 이 얘기를 나누고 내가 책을 부쳐주기도 했었다) 이를 얼마간 감지하고는 그로부터 비롯되는 세계의 새로운 현상들에 대해 구상한 적이 있었다. 그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그때 얼핏 보았다고 느꼈던 신천지를 다시 한번 꿈꾸고 싶어진다.

 

이러구러, 수년 후에 은퇴했을 때 내가 시간을 채우면서 놀 오락을 미리 찾았다는 느낌이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짓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