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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오늘의 한국 소설에 대한 인상

비평쟁이 괴리 2020. 8. 5. 07:22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7월 독회에 제출된 나의 의견이다. 조선일보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조선일보의 양해를 얻어 여기에도 싣는다.

 

세상이 어찌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 건지 젊은 소설가들의 감각이 쉬 와 닿지 않는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술 한 잔 하겠느냐고 말을 건네는 사귐법은 아주 낯설다. 생활이 문란한 연예인을 두고 완전 난봉꾼이라니까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나에게는 자연스런 표현이 아니다. 하긴 요즘 유행하는 현타라는 말을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해 두뇌에 정전이 일어난 적도 있다. 인터넷에 익숙한 이들이라 전 세계의 기발한 용어들과 희귀한 사례들을 능란히 끌어오는데 정작 한국어 사투리는 사전을 아무리 뒤적여도 모르겠다고 한다. “오두망질이란 촌로의 말을 조금만 궁리하면 우두망찰혹은 우두망절을 가리킨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얼마 전엔 외국의 지명을 구글 지도에 적힌 대로 표기를 해서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거나, 유명한 이론물리학자/과학대중계몽가의 실명을 등장시키고는 그가 노벨상을 못 받아서 억울해한다는 정보를 흘려 그 상의 입장을 쇄신한 작가들도 있었다. 적색거성/백색왜성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백색거성이란 말은 우리 작품에서만 보았다. 마음자리와 지식 환경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사와 탐구의 불성실이 눈을 껄끄럽게 한다면 여전히 내 입은 쓸 것이다.

이런 건 사소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대체로 구상이 크고 세목에서 약하다. 리얼리즘을 권장해 온 한국에서 정작 리얼리스틱한 세밀 묘사를 잘 보지 못하는 건 얄궂은 현상이다. 물론 디테일이 정확한 우리 작가들의 계보도 분명 있다. 염상섭, 채만식, 서정인, 이문구, 김원우, 임철우... 그러나 대체로 대중의 사랑과는 먼 곳에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 기승하는 것은 하나의 감정으로 몰아가는 바람이다. ‘우리는 하나니까. 그런 감정 안에 별의별 색깔을 아로새기는 솜씨가 있긴 하다. 그것들은 대체로 양념이다.

감정이 하나다 보니, 외연을 넓히는 것이 한국 소설의 특성이다. 어떤 사건이 있다고 하자. 그 사건은 사회 문제와 개인 심리, 집단 비리, 아이 교육, 가족 문제 등으로제재를 넓혀 나가는 실마리가 된다. 그 단서를 통해 이질적인 주제들이 얼키설키 얽힌다. 그 관계망을 정교하게 구축한다면 말 그대로 현실에 대한 전면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 사건들은 저마다의 자율성을 가지고 바깥으로 달아나려 해서, 좀처럼 안으로 모이지가 않는다. 그걸 억지로 꿰맞추려 하다 보면, 우연들이 개입하고, 사건은 간 데 없고, 설명이 늘어진다. 설명은 소설과 상극이다. 소위 의식의 흐름이란 게 있지 않느냐고 누가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의식의 흐름도 사건이다. 사건 기술은 현재진행의 방식으로 언어가 바투 붙어가는 것을 뜻하며, 설명은 이미 완료된 사건을 체념 혹은 만족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생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어찌 됐든 확 터져버린 주제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건 정말 어렵다. 제대로 연결하면 진짜 고래를 낚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 방향의 창작법을 생각해 보자. 어떤 사건이 있다 하자. 그 사건에 관계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사건 해결의 차원에서만 엮으면 그냥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작가는 다양하게 연관된 인물들에게 엇비슷한 문제를 안긴다. 가령 어떤 살인 사건 뒤에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휘말린 두 피의자가 있다고 하자. 피의자를 조사하는 형사도 모종의 사랑의 문제를 안고 있다. 나중에 밝혀지게 되는 진짜 살인범의 범죄에도 사랑 문제가 밑받침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랑의 불가해성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한다(물론 이런 구도는 매우 도식화된 것으로, 외국의 대중문학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좋은 작품은 훨씬 복잡한 연관망을 구축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주제 구성의 방향이다.)

어느 편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쪽은 총체적인 해석을 뻐기려 하고 다른 쪽은 깊은 이해를 추구한다. 한국 작가들은 두세 편으로 나누어 쓸 수 있는 소재를 한 작품에 몰아넣고도, 매해 장편 분량 두세 권을 부지런하게도 생산해낸다. 노동의 양으로 쳐서 한국 사람을 따라갈 국민은 없으리라. 그래도 그게 생각의 단순성에 힘입고 있는 건 아닌지, 그 단순성 때문에 세부 묘사와 구성적 골격이 무척 엉성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추천한 작품들은 근래 출판량의 과잉으로 다음 독회로 검토가 미루어졌다. 다음 독회 때는 부디 즐거운 마음으로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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