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상징의 몰락이 상징이 되어버린 도시의 이야기- 김기창의 『마산』 본문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두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어떤 특정한 장소가 소설적 주제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있다. 가령 한국 소설에선 안수길의 『북간도』가 그런 작품이다. 소설은 아니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해당할 것이다. 역시 소설은 아니지만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쉬로François Sureau는 ‘센느 강’을 자기 인생의 본질로 삼아 그 긴 줄기 속에서 문학과 사상을 길어 올린 작품, 『시절의 황금L'or du temps』(Gallimard, 2020)을 상자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흔한 건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 장소가 일종의 상징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상징성을 부여하는 건 그 장소가 내장한 역사적 경험들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글쓰기이다. 다시 말해 작가의 공력이 그 장소에 황금 갑주를 입힐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른바 ‘상징적인 것’은 그것이 구성원들의 총의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하던 시대에나 빛을 발할 수 있다. 가령 무명 가수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면서 훗날 ‘가왕’으로 등극할 ‘극장인생’의 교두보를 구축했던 것은 ‘부산’에 내장된 상징성이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보통의 한국인들 일반에 의해서도 한 마음으로 소중히 보듬어지고 뜨겁게 갈망되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상징이 환상으로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통제의 숨은 원리로 작동하는 시대에 접어들은 게 오늘날의 시대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회적 사실의 폭로는 상징 원리의 해부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게 소설의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이른바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거론되는 상당수의 사회 묘사 소설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건, 상징원리라는 심층구조에 대한 천착이 없이 자질구레한 사실의 나열로서 폭로가 증명되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이는 소설뿐만 아니라, 이른바 ‘팩트’에 집착하는 역사 해석에도 진지하게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다.)
소설가 김기창은 작가의 고향이라고 추정되는 ‘마산’이 그런 상징성을 화려하게 내장하였다가 내외에서 닥치고 양성된 오류로 인해 차츰 하락하다가 마침내 처참하게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그릴 뿐만 아니라, 그 전 과정을 복기하면서 최종적으로 불의 장례식을 치러 줌으로써, 억울한 사연의 굴곡이 징한 도시의 죽음과 죽기보다 “사는 게 더 무서”(p.260)웠던 주민들의 ‘혼’을 애도하고 역사 저편의 묘역에 안장시키는 의례를 진행하였다. 세 새대(혹은 3대)에 걸쳐 일어난 전 과정을 세세히 기록하면 아마도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긴 글쓰기 대신, 사건들을 발췌적으로 표출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삽화 구성을 통해서 400쪽 가량의 장편으로 만들었다.
‘마산’이 역사적 상징의 저장고였다는 것은 그 도시 및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특성이다. 마산은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의 시발점으로서 4.19의 뇌관이 되었던 곳이고, 70년대에 ‘마산수출자유무역단지’의 개장을 통해 정규직 노동자 계급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장소이자, 그 집약적 결과로서 1970년대 말, ‘부마항쟁’을 터뜨린 곳이었다. 요컨대 마산은 주체성이 뚜렷한 사람들의 저항과 자유의 온상처럼 여겨지던 곳이다. 그곳이 이제는 군항도시 ‘진해’와 함께 경상남도 도청소재지 ‘창원’에 통합되었다.
이 도시의 사회적 지위가 약화되어간 시간은 작가에 의하면 저항의 도시가 은밀하고도 집요한 범죄로 전락하게 된 과정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는 타이밍→마리화나라는 표식이 가리키는 파멸을 가져오는 우연한 소도구들을 잘 살아보고자 실행하는 ‘의도’의 연료로 공급함으로서, 의도를 파탄시키고 그 실행자들을, “잘못 호명된 주체 misinterpellated subject” (James R. Martel, The Misinterpellated Subject,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17)로 전락시키는 사건들이 핵심 장면들을 구성한다. 요컨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3・15 의거탑을 바라보고 섰을때, 아버지는 말했다. 이 거리의 모든 흔적은 사람들이 싸우면서 생긴 것들이라고.(p.79)
라는 진술 속에 표명된 ‘싸움’의 의지와 실행이 “항구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처럼 낭만적이면서도 간절한 바람들로 넘실거렸다”가 “오늘의 행복과 찰나의 쾌락”(p.295)으로 변환되면서,
명길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라이터를 내려놓은 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명길은 그럴 때마다 기력과 체력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처럼 조금씩 몸이 쭈그러들었고, 눈동자는 꿈속을 헤매듯 산만하게 흔들렸다.(p.72)
와 같은 모습으로 비틀거리다가, “아름다운 걸 포기하는 습관 […], 바다를 포기하고, 산을 포기하고, 자유를 포기하고, 인권을 포기”(p.295)하는 존재로 찌그러들고, 그들 안에 너울거리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가느다란 희망”(p.268)이 덧없고 희미한 꼬리를 남기면서 소실되어 가는 것이다. 이 과정의 묘사는 감각적인 공명을 일으켜 독자로 하여금 한 뜻깊은 상징의 몰락을 애잔하게 바라보게끔 한다.
이 작품에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구성이다. 전체적인 얼개는 매우 단단하다. 그럼에도 그 단단함이 거꾸로 인테리어의 다양한 오브제들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획일화하고 있다. 앞에서 사건들이 발췌적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런 구성에서 중요한 것은 각 에피소드들의 암시성과 에피스도들 간에 상호 반향을 가능케 하는 형태적 구축이다. 그런데 ‘상징의 몰락’이라는 대주제가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작용해서 세 새대에 걸쳐져 있는 사건들이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작위적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으로 독서를 거북하게 만든다. 또한 세 새대에 걸친 인물들의 얽힌 관계가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해가 되는데, 이런 ‘감춤’이 어떤 미학적 역할을 하는지는 불분명하다. 확실한 기능은 독자에 대한 ‘심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독자에 대한 효과적인 ‘도발’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일찍 책을 덮게 만드는 부정적 요인이 될지는 좀 더 숙고해봐야 할 것 같다. 혹시 이는 전체 구성의 단순성을 은폐하려는 무의식적 충동의 여파는 아닐까?
그럼에도 이 소설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특히, 비유가 그렇다.
“시리도록 냉혹한 현실 앞에서 얼어붙지 않는 시냇물 같은 의지와 사랑도 있는 것일까?”(p.57), “이 거리에 들어서면 영화 세트장처럼 오래된 나무 냄새 같은 것이 났다.”(p.72)처럼 사회적 물상을 자연에 비유하는 독특한 처리(통상 자연에 대한 비유는 특별한 사실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데 쓰인다. 그런데 김기창의 비유에서는 두 비유 영역의 어긋남으로 인하여 일종의 이질감을 자극하는 효과가 강한 것처럼 보인다.)가 눈에 띄는가 하면, “어머니의 적당히와 은재의 적당히는 조수간만차 같은 게 있었다.”(p.86)나 “현실은 재단할 수 없는 옷 같았다”(p.89), “도둑질이 해무처럼 짙고 넓게 퍼져 있었다.”(p.249)처럼 비교범주의 폭이 매우 넓어서, 요즘 유행하는 ‘생성형 AI’식으로 말하면, 관계성이 엷어서 벡터의 내적값이 음수인 상태가, 일종의 신선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비유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케 하는 힘이 있다. 가령, “검은 피부에 서글서글한 눈 그리고 대구처럼 커다란 입을 가진 남자는 어 실장, 우영이었다”(p.213)같은 묘사는 인물의 형상을 단박에 떠올릴 수 있게 한다.
1960년대 김승옥의 “감수성의 혁명” 이래, 1990년대의 윤대녕의 소설들을 비롯, 참신한 비유를 도입하여 문학적 향유의 차원을 넓힌 작가들이 있었다. 김기창도 이 반열에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런 소망을 품는 것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 ‘동미 아버지’의 편지에 기인하는 듯하다. 가상의 상황을 고안해내는 데 골몰하는 근래의 소설들에서는 보기 드물게 절실한 감정의 표백이다.

'심사평, 추천사 등 > 동인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재능이 나타났다!”- 현호정의 『한방울의 내가』 (0) | 2025.03.28 |
---|---|
희망 고문을 관두자, 절망에서 현타가 오다.- 김유진의 『평균율 연습』 (0) | 2025.03.28 |
지나치게 밝은 슬픔- 김지연의 『조금 망한 사랑』 (0) | 2025.02.28 |
거짓말의 향연 속에 감추어진 어둠의 가능성- 김홍의 『여기서 울지 마세요』 (1) | 2025.01.27 |
자연이 되고자 하는 충동- 서유미의 『밤이 영원한 것처럼』 (1) | 2025.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