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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로의 저 맑은 곧음

비평쟁이 괴리 2012. 7. 10. 12:06

* 이 글은   『연세소식』의 요청에 따라, 백양로에 대한 느낌을 적은 것이다.

 

백양로를 걷을 때면 나는 세상 먼지를 씻은 마음의 시원함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그런 느낌은 무엇보다도 곧게 뻗은 길의 길쭉함에 그 이름이 연상시키는 청결함이 보태어져 생기는 듯 보인다. 이 한 줄기 길은 당연히 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각 방향을 걸어가는 기분이 저마다 달라 흥미를 자극한다. 북쪽 방향의 길은 정문에서 출발하여 학교의 내부로 잔잔히 스며드는 길이다. 이 길의 저쪽 끝에는 담쟁이 넝쿨로 뒤덮이고 벽돌빛 고담(古淡)한 언더우드관이 함초롬히 앉아 있다. 그 자태가 신비하여 눈앞에 빤히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구름에 감싸여 어떤 까마득한 높이에 떠있는 신기루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간혹 자신의 발걸음이 근두운에 담겨 있다는 환몽에 빠질 만도 하다.

남쪽 방향의 길은 언더우드 관 앞 정원을 건너 놓인 낮은 계단이 끝난 자리의 세 길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부터도 곧게 뻗은 길이 직진의 순결성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방향에서 백양로는 두 배로 연장된다. 왜냐하면 정문을 넘어서 여전히 직선의 길이 신촌 로타리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 길은 명백하게 이등분되어 있다. 출발점에서 정문까지의 길이 자연의 길이라면 정문에서 신촌역까지의 길은 도회의 길이다. 전반부가 학교의 길이라면 후반부는 시장의 길이다. 전자가 청명의 길이라면 후자는 혼탁의 길이다. 또한 순정의 외길과 전쟁터의 대립이기도 하고, 새소리와 차소리의 대립이기도 하다. 이 대비는 내게 무엇보다도 학문과 생활을 하나로 합치는 일의 어려움을 환기시킨다. 우리가 이 교정에서 세운 참한 뜻이 있다면 그건 저 홀로 빛날 게 아니라 오로지 저자거리의 잡스런 일감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리라.

나는 차를 두고 온 날 아침이면 백양로의 나무들 사이를 훑어 마신 상큼한 공기가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막바지에 왼쪽으로 몸을 틀어 외솔관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백양로를 내려가면서 어김없이 방금 되새긴 어려움에 직면케 된다. 아침의 길이 내게 주었던 모든 정신의 고양은 그 어려움을 가중시키기만 할 뿐 결코 해소해주지 않는다. 오후의 길 자신도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는다. 백양로의 또 다른 모습은 그 텅 빈 듯한 자세 자체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쌓은 모든 노우하우를 편견으로 돌리고 전적으로 새로 시작하기를 권유한다. 즉 백양로의 청결함은 나를 하늘 가까이로 올려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고유한 의지와 행동을 통하지 않으면 결코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리라는 걸 일깨우게끔 나를 백지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이게 내 느낌만은 아니리라. 나는 70여년 전 시인 윤동주도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한다. 백양로를 북쪽 방향으로 걷다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왼편으로 몸을 틀면 바로 윤동주 시비가 보이고, 그 건너에 그이가 연희전문 시절 기숙하던 핀슨홀이 있다. 윤동주는 핀슨홀에서의 어느 밤의 느낌을 수필로 남겼으니, 달을 쏘다가 그것이다. 그이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담도 오히려 슬픈 선창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콧마루 입술 이렇게 하여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림은 한 폭의 묵화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가 날 듯하다. 들리는 것은 시계소리와 숨소리와 귀또리 울음뿐 벅적거리던 기숙사도 절간보다 더 한층 고요한 것이 아니냐?”

 

때가 한낮인가 한밤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인도 백양로 근처 자신의 기숙사방에서 어떤 깊은 심연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 심연은 방과 바깥 풍경 사이에 놓인 심연이다. 그에게 그가 안식할 방은 한 폭의 그림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건너야 할 바다를 앞에 둔 선창처럼 초라히 떨고 있다. 이 선창은 곧바로 거센 풍랑 한 복판에 놓인 작은 배의 비유가 된다. 즉 나의 방은 작은 배이고 나는 그 작은 배의 외론 수부이다. 그래서 무서운 마음이 들어 바깥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시치미를 뚝 떼고 한 폭의 그림만을 보여주고 있다. -배는 공포에 떨고 있는데, 바다여야 할 바깥은 마냥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다.

이 시치미가 침묵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너의 방은 일엽편주가 아니라 한폭의 그림처럼 평화롭다는 위무의 말인가? 만일 시인이 그렇게 들었더라면 시인은 방의 안락에 잠겨 세상일을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시인은 저 적요한 침묵 속에서 어떤 격렬한 움직임의 준비를 은밀히 들었던 것이다. 우선 방의 공포를 야기했던 것이 원래 바깥의 달빛이었다. 그 달빛이 내 몸을 간질렀던 것이다. 그래 놓고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은근히 나를 충동하고 있었다면, 실은 저 침묵 속에서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를 낼 게 아니겠는가? “바람인 양 솨-소리는 정지용의 향수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에서의 밤바람 소리, 더 나아가, 윤해연 교수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정지용 자신이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 구양수의 추풍부의 군마가 질주하는 듯한 가을 숲의 밤바람 소리를 독자에게 연상시킨다. 그 연상 그대로 말떼가 질주할 듯한 예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러나 그 질주는 풍경이 시치미를 떼고 있는 한, 오로지 방 주인, 즉 시인의 의지와 행동을 통해서만 발동될 수 있으리라. 그것이 기숙사 바깥 하늘의 맑은 정적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메시지이다. 핀슨 홀 바깥은 바로 백양로로 이어진다. 백양로의 이 청아한 직선성 역시 그와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마땅치 않겠는가? 다시 말해 백양로는 그의 순결하고 성스러운 모습을 생활사의 거친 풍파에서의 노동과 싸움을 통해서 이룩하라고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그때 순수와 혼탁은, 정적과 소란은, 학문과 시장은 분리되지 않는다. 문학과 정치도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소란한 세계에서 소란한 방식으로 가장 아름다운 고요의 세계를 빚어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더럽고 데데한 삶 자체가 맑고 성스러운 것일 수 있음을 보여주라고 백양로는 그 곳에 발걸음을 들일 때마다 내게 요청하는 것이다. (『연세소식』, 538호, 2012.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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