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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인생을 돌이켜 보면-이문구의 『장한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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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인생을 돌이켜 보면-이문구의 『장한몽』

비평쟁이 괴리 2022. 6. 4. 07:54

장한몽(책세상, 1987)은 현대의 한국 사회가 심층에 깔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의 모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형이란 어사는 그냥 쓰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문제들이 제가끔 팽창되고 분화되기 이전의 원자적인 덩어리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서로 동등한 비율과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7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가 조직적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면서 자본/노동이라는 기본 모순의 문제를 중핵으로 하여, 다른 것들이 그 주위를 휘도는 통일적 질서를 수립했다면, 『장한몽』의 세계에서 분단, 노사 갈등, 성적 차별, 관료주의 등등의 모든 문제들은 다양하되, 미분화된 상태로 엉키고 뭉쳐 있다. 그리고 작품은 그 덩어리-문제를 인간의, 아니 차라리 생명의 기본적 생존의 문제에 수렴시킨다.

장한몽은 그 생존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전개된다. 그 삶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현재의 삶으로서, 인물들은 오로지 생계를 위하여 무덤을 파고 유골을 추리며, 시신에서 나온 금니, 은십자가를 빼돌리고 머리카락을 자른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삶으로서, 인물들 각각은, 양상은 다르지만, 저마다 절박한 기본적 욕구를 위협받거나 박탈당한 삶을 살아왔다. 그 현재와 과거의 삶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 과거는 현재적 삶의 거대한 지반이며 암초로 잠복해 있다. 이 과거-현재의 생존 조건의 결핍과 누적이 사람들을 설움과 한의 늪에 빠뜨린다.

하지만, 장한몽의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설움과 한의 깊이 모를 침몰에 있지 않고 그들이, 자신의 한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펼치는 끈질긴 현실갱신의 실천과정에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실제와 실리에 주추를 대려는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삶을 되짚어 보면서 성찰하고 수정하여 다른 삶을 향해 깨쳐 나아간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 나름의 독자적 공간을 일구어낸다. 그러나 그들의 그 용기와 노력은 행복한 결말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들의 살아냄의 행위들은 서로서로 어긋나고 충돌하고 망가뜨리며, 그와 더불어 자신의 삶 역시 더욱 한과 회오의 수렁에 빠져든다.

왜 그럴까? 암시적으로 환기되는 그 까닭의 하나는 자신의 척도로 타인을 재단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이 강요한 한을 똑같은 논리에 의해 되갚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타인을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유령으로 만들며, 후자의 경우는 스스로 아니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령의 삶을 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때 사람들의 한과 설움은 모으려 할수록 산지 사방으로 흩어지는 마이너스로 휜 공간이 된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그 흩어지는 것들을 모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또 하나의 공간을 겹으로 구축한다. 장한몽에서 그것을 지탱해주는 힘은 세밀한 의식의 되새김과 문체의 리듬이다. 그 되새김은 삶의 추악하고 비참하며 흉측한 편린들을 간종그리고 문체의 리듬은 그것에 집단적 생활감각, 그 굴곡의 기운을 부여한다. 이 되새김과 리듬의 힘이 말미에 보통사람이 되기 위해서, 또한 보통사람들에게 뺏긴 자기를 도로 찾아내기 위해서, 보통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는 잠정적 결론을 맺게 하지만, 독자의 자리는, 그 결론에 있다기보다는, 겹으로 놓인 두 공간 사이에 있을 것이다.

- 1987. 8. 19, 중앙일보, 발표 당시 제목: 벼랑에 선 인생들의 한과 꿈

이 글은 죽은 기형도가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있을 때, 내게 청탁해서 쓴 글이다. 그 당시 마포 신수동에 있었던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얼굴 보고, 그 이후 내가 문학과 사회창간호에 민중문학론의 인식구조를 썼을 때, 그걸 취재하고자 또 다시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났다. 그와의 인연은 그게 전부였다. 이 글을 올리려고 하니까 그의 잘 생긴 얼굴이 컴퓨터 화면을 자꾸 가린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사용한 도구는 8 bit Apple 2 컴퓨터의 세운상가제 클론 컴퓨터의 자체 내장 워드프로세서였다. OSCP/M이었는데, 얼마 후 16 bit로 도약할 때, 규격 전쟁에 밀려 폐기되었다. 따라서 1980년대 후반에 내가 쓴 원고들은 파일 형태로는 모두 읽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위 글은 인쇄한 글을 아주 오랜 후에 스캔해서 보관해 놓았던 것을 책에 수록할 때, 타자한 것이다. 당시 중앙일보 발표문에서 얼마나 수정()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