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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감염병의 무엇에 저항해야 할까?

비평쟁이 괴리 2021. 1. 30. 10:52

 

글은 계간, 문화와 (삼성문화재단) 2020 가을/겨울 호에 감염병의 인류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잡지가 간행된 시간이 흘렀다고 판단되어, 블로그에 싣는다.

1. 미래가 없는 인내

 

옥스퍼드 출판사의 짧은 소개총서에 포함되어 있는 팬데믹Pandemics 매우 짧은 소개 감염병 대한 기술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감염병은 통상 특정한 시기에 예기치 않게 일어나 광범위하게 퍼진 질병 사고를 말한다[i].

 

그러니까 감염병은 사고. ‘사고 성격은 예측할 없었다 데에 초점이 놓인다. 미리 대비할 없고, 원인을 모르니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대강의 윤곽을 그려보기도 전에 지나가 버린다. 지구상의 생명이 사고를 견딜 있는 그것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사고는 일회적이다. 그러나 영향은 지속적이다. 수많은 사상자가 생기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 자체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리기 일쑤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 능력에 대한 의심에 보태, 공동체의 기능과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황하고 인간 이성 저편의 다른 권능에 마음을 의탁하려고 한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기원전 430-426년의 아테네 감염병 펠로폰네소스 전쟁 도중에 일어나 아테네 시민 25~35 퍼센트의 사망을 초래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신들이 화가 났다고 믿었는데, 그러나 신을 달래는 어떤 제의도 효과가 없었다.[ii]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의 의존은 현대에도 거의 교정되지 않았다. 카뮈의 페스트(1947)에서도 인물들의 오류의 온상으로 거듭 지목된 것이었다. 오늘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도 뚜렷한 진화는 보이지 않는다.

페스트 주인공 리외는 이런 불가항력적인 사태에 대한 실존적 윤리학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태도는 인류에게 최소한의 기대조차도 좌절시키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미래가 없는 인내 거꾸로 적극적인 행동 수칙으로 삼는 것이다. 헛된 희망을 품지 않고 견디면서 상황과 싸우는 , 그것이 카뮈적 반항인 기본 원리이다. 원리는 아래에 세부 원리를 갖는다.

첫째, 모든 거짓을 밀쳐내는 인식적 명증성, 둘째, 문제의 상황에 내부인으로 참여하기, 셋째, 그러나 외부인으로서 자기를 인식하기, 왜냐하면 그럴 때만 집단적 동일성 내에 도사리고 있는 편견과 미신을 극복할 있기 때문이다[iii].

세부 원리는 카뮈적 태도의 특별함을 가리킨다. 특히 번째 원칙 때문이다. 지금까지 카뮈에 대한 이해는 번째 단계에 머무른 경우가 태반이었다. 카뮈는 우리는 배에 타고 있다 입장의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되어 왔고, 이는 카뮈가 알제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며 자라온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설명으로 설득력을 얻었다. 그리고 타인은 지옥이라고 언명했던 사르트르의 태도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전체를 통틀어 우리는 배에 타고 있다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je me révolte donc nous sommes.”라고 말했을 뿐이다. 카뮈는 말을 반항인에서 무려 4번이나 되풀이하였다[iv]. 그러면서 스스로 반항인 말에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고 있다[v]라고 말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Je pense, donc je suis.” 절묘한 패러디라고 있는 명제는 생각에서 반항(자유의 추구)으로 인간 행위의 중심을 바꾸었고, 동시에 에서 우리 초점을 이동시켰다. 하지만 카뮈의 우리(공동체) 대한 관점은 흔한 설명처럼 생래적인 것이 아니었다. 자유인으로서 반항하는 행동, 그것이 우리 이어주는 출발점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형이상학적 반항이라는 절의 마지막 문장을 우리는 혼자다Nous sommes seuls.[vi]라는 말로 메지내었다. 따라서 우리사이에는 공백이 있다. 어떤 방법적 원칙이 우리 이끄는가? 카뮈의 스승이었던 그르니에에 의하면, 까뮈의 비결은 명예와 충실성 그의 반항의 덕목들이라는 데에 있다[vii]. 반항이라는 자유의 추구를 자신을 명예롭게 하는 일과 동일시할 , 그러한 명예는 이웃에 대한 충실성( 공동체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 통해서만 입증될 있는 것이다.

 

2. 추락 너머: 함께 살기와 나의 자유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우리는 감염병의 발생이 인류에 끼친 가지 기본적인 여파를 그려볼 있다.

하나는 감염병의 급습이 인류의 퇴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인구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도덕적사회적 지반을 무너뜨린다. 우선은 정신적인 공황이 불어닥치고 여파로서 사회구조가 위협에 처한다. ‘아테네 감염병 공황상태를 거쳐 그리스 민주주의 침식을 야기하였다고 있다면, 1830년대 유럽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당시의 의학 전문기자로 하여금 콜레라 공포가 콜레라라는 괴물이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인구를 죽음으로 내몰 있다[viii] 점을 걱정하게 했다. 콜레라는 또한 세계적 규모의 감염병의 단초가 된다. 콜레라 공포는 1870년대에 와서 유럽과 미국으로 하여금 콜레라의 진원지로 알려진 인도로부터의 여행(지금의 연구에 의하면, 발생원은 분명치 않다), 나아가 동방과의 교류 전체를 제한하는 움직임을 유발했다.[ix] 나아가 이러한 공포는 사회적 낙인찍기 분위기를 조성하여, 콜레라에 시달린 미국 사람들은 러시아, 이탈리아, 호주, 헝가리, 아일랜드로부터 원하지 않은 이민자들’” 질병의 상징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구조에 대한 위협[x]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우리는 온갖 종류의 유사한 해프닝들이 폐수처럼 쏟아지면서, 황당무계한 분위기들이 감염병보다 지독하게 번지는 광경을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감염병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지나가거나 아니면 독감처럼 인간사회에 동화되었다. 그래서 감염병이 인류의 정신과 사회 구조를 결정적으로 퇴화시킨다는 것을 확증할 사태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시성과 동화성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순간 감염병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인류는 약간의 기회에서 갱생의 실마리를 찾는다. 로마의 말라리아는 질병과 환경의 연관성을 검토하게 했다[xi]. 환경의 개선을 통해서 감염병의 발생을 억지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것이다. 질병 자체에 대한 대처보다 질병이 발생할 있는 조건들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선회는 18세기 중엽에서부터 19세기 사이에 치료 아니라 위생 대책의 근본으로 세우게 하였다[xii]. 우리나라에서도 질병관리본부 설립과 질병관리청으로의 승격 역시 이러한 관점 전환의 줄기 속에 놓인다.

따라서 감염병이 인류에게 끼친 진정한 영향은, 재앙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현실 극복의 드라마에 있다고 있을 것이다. 인류는 이런 드라마를 통해, 단순히 진화(적응) 원리를 따를 뿐만 아니라 진화 시스템 자체를 진화시킬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에서 카뮈를 통해 제시한 마지막 가지 원칙은 그러한 드라마의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는 인간적 대응들이다.

무엇보다 번째 원칙, 내부자로서 참여하기 감염병을 이겨내는 가장 중요한 자세임을 역사는 그대로 증명하였다. 자세는 공동운명의 인식과 그에 의한 공통 행동을 처방으로 만들었다. 방금 앞에서 말한 치료로부터 위생으로의 전환은 감염병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했을 가능했던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오늘날 팬데믹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책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21 유엔 75주년 기념 고위급회의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연대와 협력은 바이러스가 갖지 못한 인류만의 힘이고, 코로나에 승리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라고 발언한 것은 그런 태도의 표현이라고 것이다.

이러한 대처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분명히 목도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말할 필요조차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개의 전제가 따라야 한다. 하나는 카뮈에게서 번째 원칙, 인식의 정확성이다. 왜냐하면 공동의 대응이 잘못된 믿음mauvais foi에서 비롯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전제는 불가피한 공동운명의 방침들이 개인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에 있어서 극도의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진화와 갱신은 자유를 디딤돌로 날아오를 있기 때문이다. 카뮈에게서 번째 원칙이 바로 자리에 오롯한 촛불로 우리의 각성을 요구하는 것이니, 감염병의 사태 앞에서 내부인이자 동시에 외부인이 된다는 것은, 감염병에 갇힌 자이면서도 동시에 감염병으로부터 해방된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감염병을 물리쳤을 때의 자유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감염병의 현장 안에서 싸워야 한다. 그런 자유인이 우리의 미래가 있도록.

따라서 현재의 강령들과 시행세칙들이 자칫 억압적 기제로 변화하지 않도록 우리는 항상 감시해야 하고, 또한 우리 스스로를 거듭 점검해야 한다. 점에서 카뮈의 반항인 고뇌는 다시 한번 우리를 깊은 성찰 속으로 인도한다. 그는 1959 6월의 작가수첩 이렇게 적는다.

 

나는 윤리적 관점을 포기했다. 윤리는 추상으로, 불의로 인도한다. 윤리는 광신과 맹목의 어머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남의 목들을 잘라야 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윤리를 설파하면서도 도덕의 높이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면 좋은가? 목이 잘려 떨어지는데 그는 충실하지 못하게 법률을 제정한다. 윤리는 둘로 자르고 분리시키고 살을 발라낸다. 윤리를 피해야 하고 심판받는 것을 용납해야 하고 더 이상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말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xiii].

 

반항인 그런 윤리가 압제로 전화하여, 사회의 법칙으로 자리잡는 것을 도덕적 허무주의와 더불어 오직 권력 의지만[xiv] 날뛰는 사태로 보았었다. 권력화된 허무주의는 실제 감염병보다도 무서운 감염병이다. 우리는 끔찍한 재앙을 20세기의 독일과 소련에서, 나아가 코소보에서 여실히 보았고, 여전히 지구의 사방에서 보고 있다.

 

3. 우리 자신에 대해 깨어 있으라, 놀람 있으라

 

따라서 감염병이 인류에게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인류 자신이 감염병의 수원이 수도 있다는 자각, 그리고 공동운명과 자유 사이의 쉽지 않은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출현이라 것이다. 이에 대한 진지한 숙고만이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휩싸인 우리를 노예화의 방향이 아니라 자유의 방향으로 연대의 길을 더듬게 것이다. 코로나 사태에 대응한 올해의 책은, “깨어 있으라, 놀래지 마라Be Alert, Not Alarmed![xv]라는 어느 웹사이트에 문구를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 앞의 인류가 취해야 태도를 가장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야 것이 있다면, 명제는 감염병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인류 자신에 대해서도 작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감염병을 이겨낸다는 명분하에 감염병의 숙주로 기능하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점에서 인류는 감염병에 대해서는 두려워 말아야 하지만 인류 자신에 대해서는 항상 놀람의 촉수를 세우고 있어야 것이다. 그것만이 운명과 자유를 상통시키는 길일 것이다.

 


[i] Christian W. McMillen, 『팬데믹: 짧은 소개 Pandemics: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epub version.

[ii] Jo Hays, 『감염병과 팬데믹: 인류의 역사에 그것들이 끼친 영향 Epidemics and Pandemics: Their Impacts on Human History, Santa Barbara, California: ABC-CLIO, 2006, p.3

[iii] 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풀이는 졸고, 「의사의 윤리에 대해서 - 『당신들의 천국』과 『페스트』의 경우」, 정과리, 『문학이라는 것의 욕망 - 존재의 변증법 · 4, 역락, 2005, 356-366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iv] Albert Camus, 『반항인 Lhomme révolté in Oeuvres complètes - III. 1949-1956 (coll.: Pléiade), Paris: Gallimard, 2008, p.79, 149, 276, 277, 375

[v] 『『반항인』에 대한 옹호』(1952.11, 생전 미출간), in ibid., p.375.

[vi] ibid., p.149; 알베르 까퀴, 『반항하는 인간』, in 알베르 까뮈, 『전집 - 5. 작가수첩 II / 반항하는 인간』, 김화영 옮김, 책세상, 2013, 2, 538

[vii]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서문」 in Albert Camus, Théâtre, Récits, Nouvelles (coll.: Pléiade), Paris: Gallimard, 1962, p.XXI

[viii] James Johnson, The Times 기고문, in Christian W. McMillen, op.cit.에서 재인용.

[ix] Christian W. McMillen, op.cit. Chapter 4.

[x] Joseph P. Byrne, 『역병, 팬데믹, 전염병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Pestilence, Pandemics, and Plagues, Greenwood Press, 2008, p.585.

[xi] Jo Hays, op.cit.,  p.13.

[xii] 졸고, 「프랑스 문학과 의학」, 앞의 책, 379-380쪽 참조.

[xiii] 알베르 까뮈, 『전집 - 7. 작가수첩 III / 스웨덴 연설 / 문학비평』, 김화영 옮김, 책세상, 2013, 2, 329-330.

[xiv] 알베르 까퀴, 『반항하는 인간』, 앞의 책, p.538.

[xv] Mark Davis, Davina Lohm, 『팬데믹, 공중, 그리고 서사 Pandemics, Publics, and Narrative, New York:Oxford University Press, 2020,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