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의 숲 속으로 (15)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쉬는 시간의 잡념 나는 가능한 한 시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려고 애썼다. 어쨌든 그 의도가 이 연재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시 한 편을 해설하는 데 이리도 시간과 지면이 많이 들었다. 말이 많아지면 그만큼 읽는 이의 생각의 양을 배가시킨다. 읽는 이는 그 양으로도 이미 쉽지 않다. 그러나 제대로 이야기 하려면 이만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쉬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이야기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여기에도 님의 법칙이 작용한다. 쉬운 이야기는 바른 이야기를 기루고 바른 이야기는 쉬운 이야기를 기룬다. 그러나 ‘쉬움’의 극과 ‘바름’의 극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넓어서 자장이 형성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면 순진한 의도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글은 아주 어린 사람들, 문학이라는 걸 ..
님의 자기 증명 「님의 침묵」에 대해 이어 말한다. 지난 호에서 ‘님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님이 ‘조국’이니, ‘부처’니, ‘연인’이니를 두고 선택하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님을 밝혔다. 독자들이 주의깊게 읽어야 할 것은 님을 님이게 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 점에 주목을 하자, 님이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요동하는 파동적 존재임을 알 수가 있었다. 한 극단에는 님바람난 기룬 이들, 즉 거짓 님의 모습에 홀려 방황하는 “어린 양들”이 있다. 다른 극단에 있는 이는 부재하는 님이다. 만해는 방황하는 어린 양을 진정한 님으로 만들려 하고 부재하는 님을 현존시키려 한다. 즉 두 극단 모두에서 님은 변모를 최종적 조건으로 갖는다. 어린 양도, 부재하는 님도 모두 변모해야 진정한 님이 된다. 이 변모가 어떻게 ..
I.「님의 침묵」을 다시 읽는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
시의 숲을 ‘지나서 가지’ 말고 ‘지나다니자’ - 연재를 시작하며 하염없는 슬픔의 숲 속에서 어느날 나 홀로만의 길을 가고 있었네; 거기서 사랑의 여신을 만났다네 그이는 나를 불러 세우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네. 나 대답하기를, 아주 오래전에 운명이 나를 이 숲에 유배하였으니. 당연히 내 스스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방랑자임을 자청했노라. - 샤를르 도를레앙Charles d’Orléans 「발라드 21」 문학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독서량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대신 판매는 양극화되었다. 그럴 듯한 작품이 만 부를 팔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 극소수의 베스트셀러는 백만 부를 훌쩍 넘긴다. 그걸 산 독자들이 책을 읽긴 했을까,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유달리 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