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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현대문학』 4월호엔 이재룡 교수가 퐁탈리스(Jean-Bernard Pontalis)를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그이가 돌아간 게 지난 1월이었는데, 한국 언론에서 그의 부고를 읽은 적이 없다. 그래도 예전에 알튀세르가 사망했을 때 한국 언론이 보인 미미한 반응에 충격을 받았던 데 비하면, 그렇게 놀랍지가 않다. 퐁탈리스는 알튀세르와 같은 명망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의 미디어에, 심지어 대부분의 한국의 문학·문화계 종사자들에게 완벽한 무명으로 존재했던 건, 그가 쇼맨이 아니라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작업에 매달려 온 노동자. 정신분석 사전을 만들고 정신분석의 소중한 개념들을 연마하고 정련한 노동자다. 이런 삶은 새로운 어휘를 창안하여 세상을 당황케 하는 발명가의 삶과도 다르고, 그런 새..
New York Review of Books를 읽다가 대산 세계문학 총서에 시집 『문턱 너머 저편』이 번역되었고, 내가 이 블로그에도 짧은 감상문을 올린 바 있는 미국 시인 아드리안 리치Adrienne Rich 여사가 지난 3월 28일(수요일) 82세의 나이로 이승을 하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꼭 한 번 뵙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내 귀는 너무 어두워서 그이가 바람결 사이로 흩어져 흔적도 없어진 지금에서야 겨우 소식을 알고 가슴에 안타까움을 몇 방망이 내리치고 한숨을 쉰다. (2012.06.24)
『마가진 리테레르 Magazine littéraire』 최근 호를 뒤적거리다 보니,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웨스턴 삼부작’인 『경계의 삼부작 The Border Trilogy 』(세 작품의 제목은 All the Pretty Horses, the Crossing, Cities of the Plain이라고 한다. Amazon에 들어가 Everyman's Library에서 1999년 출판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 불어로 번역되어 서평이 실려 있었다. 불어 제목은 La Trilogie des confins(Éditions de l’Olivier, 2012).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서평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소설에서 발췌해 소개하고 있는 짧은 대목에서이다. 그대로 옮겨 본다. “그는..
지난 연말에 가족 일로 스페인에 다녀온 뒤, 일거리가 밀려서 블로그는 갱신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처지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차를 임대해 그라나다와 론다와 세비야를 돌았다. 할 일을 대책 없이 미룰 만큼, 가 볼 만한 곳이었던가? 그렇다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나는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소피아’, ‘티센’ 세 미술관을 다 다녔고, 알함브라 궁전을 갔고, 론다의 절벽을 방문했으며, 세비아의 거대한 교회와 해양 박물관을 구경하였다. 방문한 모든 곳이 아주 특이한 목청으로 무한한 말을 뱉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내가 본 것에 대해 언젠가 곱새길 기회가 있으리라. (2012.01.12.)
소설은 결국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오늘의 한국소설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그것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이래, 이렇게 많은 아이디어가 백출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마치 짧은 꼬리 혜성들 같은 게 태반이다. 첫 장의 이야기와 문장이 신기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반의 반도 가지 못해 벌써 이야기가 꼬이고 인물들이 뜬금없이 사라지곤 한다. 억지로 아귀를 맞추지만 중간 중간에 벌건 흙이 흉하게 드러난 소출 적은 부실한 농토 꼴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텅 빈 자리를 메꾸려고 본래 이야기와 아무 연관도 없는 잡담용 삽화들을 집어넣기도 한다. 발자크Balzac의 ‘인간희극’이 삽화épisodes들의 총체이고, 차라리 삽화들의 연관관계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