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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현황과 가능성

비평쟁이 괴리 2024. 11. 20. 09:39

아래 글은 2014년에 발표된 것이다. 그 이후 한류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필자의 생각에도 얼마간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입장은 여전하다. 『문신공방 2』에 실렸기에 블로그에 올리며, 사실적 자료로서도 유의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I. 한류 현상의 실제와 범위

 

한류는 1990년대 말부터 한국의 대중문화가 동남아의 대중들에게 열광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류란 국제적 규모에서 향유되는 한국 대중문화와 수용 현상을 묶어서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국에서 제작되었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변별되는 독자적인 문화적 특성을 공유하며, 한국에서의 향유에 그치지 않고 낯선 외국의 수용자군의 많은 수가 탐닉하게 되어 세계적인 인정을 받게 대중문화들과 수용 현상이라 있을 것이다. 한류 현상은 TV 드라마와 댄스 가요에서 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도전/체험 예능프로그램에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지역적 범위는 동남아의 경계를 넘어 세계 전역으로 뻗어가고 있는 중이다. 2000년대에 이미 남미에서도 한류 붐이 확인되었는가 하면 2010년을 전후해서는 한류에 몰입한 유럽의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한글의 보급, 한국음식의 진출, 스마트 첨단 전자기기,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도 한류에 포함시키는데, 현재의 문화적 관점에서는 이런 경향들을 포괄하기는 무리라고 생각된다. 우선 전자기기는 사용 성능과 관련된 것이라 문화와의 연관은 발명국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한글, 한국음식 등은 아직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과 향유의 차원까지 다다랐다고 보기 어렵다. 애니메이션은 지금 성장 중이지만 아직은 국제적 유통을 말하기에는 이르다(일본의 망가 비교해 보면 금세 있을 것이다.) 반면 영화는 외국의 매니아들을 확보한 홍상수·김기덕의 영화들이 정작 한국에서는 거의 관객을 모으고 있지 않다.

따라서 당분간은 티브이 드라마와 그룹 댄스 가요,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한류를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다.

한류 붐을 일으킨 대중문화를 거칠게 모아 시대순으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1].

 

1. 1997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 채널 1에서 방영되면서 중국 시청자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2인조 댄스 그룹 클론(Clon) 「쿵따리샤바라」가 한국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여세를 몰아 동남아에 진출하여 반향을 얻었다.

2. 연예 대행사인 S.M 기획에서 1996년부터 H.O.T. S.E.S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키며 한국에서의 인기를 동아시아로 확대시켰다. H.O.T. 2000 베이징 공연은 중국 청소년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2]

3. 드라마 『겨울연가』가 2003 일본 NHK-BS2 방영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4. 드라마 『대장금』이 2004-2005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선풍적인 환호를 받았으며, 중동, 남아메리카에까지 열기가 확산되었고, 2013년에는 유럽의 그리스에까지 진출하였다.

5. 가수 2004 출시한 앨범 Its raining」이 아시아에서 100만장이 넘은 판매고를 기록했고 이듬해 Rainy Day 2005 Tour라는 이름으로 도쿄, 홍콩, 나아가 뉴욕에서까지 공연하여 8 도시에서 15만명의 관중 만났으며, 2006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중의 명으로 선정[3]되었다.

6. 2010년경부터 한국의 드라마, 그룹의 댄스가요, 그리고 도전/체험 예능프로그램들이 유럽의 청소년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7. 가수 사이Psy 「강남스타일」이 2012 발매되자마자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은 , 영국, 독일, 프랑스 30개국 이상의 공식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유튜브에서 20억건 조회.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7주간 2. 1200만건 이상의 싱글을 판매하는 대기록을 세웠다[4].

 

II. 한류의 역동성

 

우선 지적해야 것은 한류는 전통적인 한국문화와의 뚜렷한 연관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해 이미지는, 지금 코리아 에어 라인(KAL) 홍보 잡지의 제목으로 쓰이고 있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다. 용어는 한국을 세계의 격동과는 무관한 은둔의 나라로, 한국인을 정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로 연상케 한다. 실제로 그런 이미지는 한국인들 자신이 스스로에게 연결시켜 것이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문화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던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한국 문화의 특성을 (line)에서 찾았고, 선의 굴곡에서 비애미 발견하였다. 지나치게 수동적인 이미지에 저항해서 한국인들은 다른 이미지를 들고 나왔는데, 가령 김용준의 고아(高雅) , 조윤제의 은근과 끈기, 고유섭의 무기교의 기교 같은 것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이런 개념들 역시 야나기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단순·소박하며 고요하고 은밀한 상태를 지향하고 있어서 오늘날 한류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지적하는 활기찬 역동성과는 거리가 것이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 한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수동적 양상들을 다듬는 데서 나왔다. 1970-80년대는 그러한 방향의 절정에서 개념을 부각시켰다. 한국인의 역사적 고난으로 인한 슬픔의 감정에 인내의 의지가 부어져 농익은 슬픔, 졸인 비애 같은 승화된 슬픔의 감성을 빚어냈으니, 그게 ()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인 특유의 정제된 미를 창조해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니까 한류는 느닷없이 한국인들 앞에 출현한 셈이었다. 그게 출현하자 한의 문화, 많은 세상  야속한 님아라고 애곡하던 오백 순식간에 한국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상 한국인들은 슬픔의 민족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주 활기차고 생의 환희를 구가하는 사람들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한국인의 활기를 두고 세계인들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명명으로 특성을 분명하게 지칭하였다. 세계인들은 다이내믹 코리아의 가장 명징한 사건을 2002 한일월드컵에서의 한국인의 응원문화에서 보게 된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운동장 아니라 도시 곳곳의 거리로 나와 빌딩에 설치된 야외스크린을 바라보며 일사불란하게 응원을 펼쳤을 아니라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하고 돌아가는 마무리를 보였다. 모습은 세계인들을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유럽의 미디어들은 광경을 비상한 관심을 두고 보도했으며, 이후,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역동성이라는 에피셋epithet 당연한 듯이 붙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티브이 드라마, 그룹 댄스 가요에 대해서도 기꺼이 같은 라벨을 붙였다.

19세기에 현대시의 기초를 제공했으며 문명 비평가이기도 했던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스펙타클과 무도회에서 각자는 만인을 향유한다[5] 말한 적이 있는데, 말처럼 오늘날 한류에 맞춤한 것도 없을 것이다. 한류에서 비치는 역동성 무엇보다도 느낌의 강도와 확산력에 있을 것이다. 기분과 희열이 거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기분과 희열에 곧바로 일치하는 데서 오는 황홀감. 그런데 역동성은 자체로 문화의 성분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문화의 양적 정도 가리킬 뿐이다. 유럽인들이 보기에 동북아시아의 다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은 성질을 드러내고 있다. 항상 그리고 모두에 의해서 동의되는 바는 아니지만, 대체로 유럽인들은 중국 문화의 특성을 도가적 신비주의에서, 그리고 일본 문화의 특성을 극단적인 인공성에서 찾았다(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일본 여행을 다녀온 문화적 충격을 『기호의 제국Lempire des signes』이라는 [6]으로 정리하였다.) 그런 특성들은 중국의 전통적 산수화, 그리고 일본의 가부끼 극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있는 문화의 고유한 성질이라고 있다. 그에 비해 역동성이란 어떤 문화들에도 접목 있는 양태이다. 신비주의와 인공성이 형용사라면 역동성은 부사이다. 부사는 이질적인 형용사들을 넘나들며 붙는다. 가령, -빨강, -노랑, -파랑,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한류의 형용사는 무엇인가?

 

III. 한류의 가변성

 

현재 한류의 형용사, 한류를 하나의 문화이게끔 인지하게 하는 고유한 문화적 정체는 보이지 않는 같다. 한류에 대한 수용의 면이 지역마다 아주 상이하게 나타나는 것은 때문일 것이다. 가령 일본 주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겨울연가』의 성공은  일본 여성들에게 잊혀진 아련한 첫사랑에 대한 순정과 기억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7] 기인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중국과 동남아에서의 『대장금』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열광에도 순정 대한 향수가 개입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분명치 않다. 초기의 연구자들은 동남아에서의 한류 붐을 동아시아인에게 익숙한 정서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내렸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지극히 부실한 것이다. 우선 동아시아적 정서라는 실재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여러 나라 국민들의 감정을 하나로 묶어 있는 동아시아적 정서라는 있는가? 그에 대한 과학적 증빙은 아직 제출된 적이 없다. 다음, 이러한 설명은 여타 동아시아 국가의 문화들에서 표현된 동아시아 정서와 한류에서 표현된 그것 사이의 차별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하필이면 한국의 드라마만이 중국과 동남아의 여러 나라에서 통했는가? 아시아적 특수성에 근거해서 한류를 풀이하려는 시도는 초점을 맞춘 것인 듯하다.

오히려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일반성에 눈길을 돌리는 타당할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세계에 통하듯,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세례를 받은 세계의 국가들에선 세계화의 물길 속에서 대중문화가 하나로 통하고 있다고 상정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한류가 전통적인 한국문화와는 무관하다는 얘기를 하였다. 실제로 댄스 그룹의 경우 이들의 음악과 춤은 S.M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철저한 세계 댄스 음악의 추이와 세계 시장 조사에 근거하여 만들어졌고, 혹독한 합숙훈련을 통해서 단련되었다. 그러니까 한국의 댄스 가요는 세계적인 댄스 가요의 특성을 특별히 돋보이게 하는 성공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통용될 있었다는 얘기가 가능하다. 이는 드라마에도 같이 적용될 있을 것이다. 티브이 드라마가 세계적인 단일성을 구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말할 단계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드라마의 효과에 작용하는 요인들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통될 있는 것이 지역적 특수성이 아니라 스펙타클적인 요소 것은 분명하다. 구성적 완결성이나 지역적 특수성은 고급 문화에는 적용되어야 마땅하지만, 대중소비문화에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홍석경은 프랑스에서의 한류 붐에 대해 여러 되풀이된 설문조사를 통해 끈질기게 조사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특징들을 잡아내었다[8]. 가지는 특별히 소개할 만하다. 첫째, 프랑스의 한류 팬들은 대체로 한국 드라마의 전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야만 하는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역으로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이해를 못하는데 흥미롭다? 현상은 그런 흥미를 촉발할 요소들이 없으면 나타날 수가 없다. 실제로 흥미를 촉발할 요소들이 주목해야 다른 하나의 특징으로서, 바로 디테일들의 자극성이 바로 요소이다. 하나의 반응만 예로 들어보자.

 

이 24회 너어어어무 좋아. 대표님은 때로는 바보 같고 ...... 특히 사랑의 감정에서는 더해. 그런데 이게 바로 그의 매력이야!! 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 적이 없는 걸 잊지 마시라(서른살인데 사량을 못해봤다니 ...... 이건 패쓰). 그러니 그에겐 사랑이 새로운 감정이고 이제야 배우기 시작하는 거지(오 마이 갓, 오늘 너무 멋있었어 *_*). 그에게 사랑이 너무 잘 어울려. 아예 광채가 나던데!!! 연출자 아니 분장사가 어떻게 이걸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는데(물론 연기도 잘하지만), 매회마다 놀라게 만드네. 드라마가 고화상이라 기술적으로 시선처리를 어떻게 하는지가 다 보여. 촬영 때 하얀 반사판을 쓰고,보통 하나면 족한데,글쎄 이 드라마에서는 눈동자 속에 세 개의 반사판이 보이더라고. 그래서 눈 속에 천개의 별이 반짝이는 효과가 나고 여기에 조심스레 인조눈물을 더해 빛나게 하면 끝나는 거지.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됐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오늘 대표님의 시선에 빠져 행복했다니깐. *_*[9]

 

한국 드라마 팬을 매료시키는 무엇보다도, 인물의 표정과 태도가 발하는 광채이다. 인물에 얼마나 몰입해 있는지, 인물의 눈동자 속에 개의 반사판 찾아낼 정도이다. 그리고 그는 기술적 효과임을 알면서도, 반사판이 개나 쓰여 개의 별이 반짝이는 효과 내는 것에 감격하고 인조눈물 광채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는 사실에 다시 감격하면서 행복 빠진다. 디테일의 자극성이 유럽 시청자의 눈으로 보기엔 그럴 듯해 보이지 않는 전개마저도 흥미로운 의문점으로 변화시킨다. 자극성이 심화되면, 줄거리에 대한 의문을 넘어서서, 유럽인들의 문화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멜로드라마의 최루적 상황을, 한국 멜로드라마가 주는 격렬한 감정 상태가 견디기 너무 힘든 데도 불구하고 치명적 아름다움의 세계[10] 받아들이고 거기에 몰입하는 지경에까지 다다른다. 홍석경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듯이, 한국 드라마가 지니는 결정적 매력은 기능적 요소들의 통합적syntagmatic 관계를 넘어선 요소들의 변주인 계열적paradigmatic 요소들[11] 것이다.

위의 예는 디테일의 자극성을 뒷받침해주는 기술적 정교함이라는 것을 또한 가르쳐준다. 동남아 한류 팬들의 경우, 점이 한국 드라마의 우수성을 보장해주는 원천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동남아에서의 폭발적인 호응이나 남미나 중동에까지 한국 드라마가 수출되는 사실에 대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미디어 산업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낫거나 적어도 대등하다고 있는 유럽의 경우에는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이 자극의 증대에 쓰인 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그러나 바로 점이 미국에는 한국 드라마가 그다지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설명할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차이는 타자를 이해하는 태도에 관한 지역의 문화적 관습의 차이와 연관된 것으로, 자리에서 상론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의문이 제기될 있다. 기술적 세련도로 보자면, 일본 드라마가 앞서 나가거나 적어도 대등할 텐데, 일본 드라마에 대한 호응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미디어 산업 바깥에서 설명을 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한류 팬들의 상당수가 일본 드라마 팬이기도 비해, 동남아 한류 팬들이 일본 문화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요인에서, 다시 말해 일본이 20세기 전반기에 동남아를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던 사실에서 찾아야 것이다.

 

IV. 한류의 전망

 

이상의 이야기는 결국 한류 현상은 문화적 독자성과는 연관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히려 포착되는 것은 대중문화의 보편적 문법이고 보편성을 자극적 감각 물질로 집약해내는 한국 문화 산업의 솜씨이다. 무엇에든 특별한 활기를 주는 , 그것이 한류의 특성이자 강점이다. 이런 활기 배가 능력 자체가 문화를 형성하는 길이 수는 없을까?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그러려면 대중문화의 활력이 고급문화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고급문화의 문화적 자산을 흡수하여 대중문화 자신의 문화적 내용을 풍부히 하는 한편, 한국 고급 문화가 대중문화와의 연계를 통하여 자신의 문화적 문법을 세계 문화의 문법에 조응할 있도록 갱신해 나갈 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한류는 고급문화와의 연결 고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문학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무관한 사이이다. 음악, 미술, 무용 등의 순수예술에서 가수, 연주자나 화가 예술가 개개인의 활동이 돋보이는 경우가 자주 있으나, 그것이 한국문화 일반에 대한 반응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 한국 영화는 세계적 인정의 반석 위에 올라 있으나, 이제는 반응이 식어버린 임권택 영화를 제외하고 홍상수·김기덕의 영화는 일반 미학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을 [12] 한국 영화 전반의 특수성과 연결지어 이해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들의 영화는 한국의 대중 관객들에게는 거의 외면당하고 있다. 요컨대 세계 문화의 구도 내에 진입한 경우에도 한류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현상은 한류와 한국 고급문화 양쪽에 바람직하지가 않다. 문화적 자산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운동 능력은 에너지의 고갈에 직면할 것이며, 운동 능력을 상실한 문화적 자산은 자신의 가치를 알릴 힘도 없을 아니라 스스로를 갱신할 여력도 가지지 못하기 일쑤다. 중요한 것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기능적으로 연계되어 총체적으로 움직여서 세계의 문화수용자들에게 포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역 단위의 문화적 유산이 종족적 폐쇄성을 벗어나 여타 세계문화와 교섭할 있는 연락망을 설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연락망의 개설을 매개해 정부 기구들의 지혜로운 판단과 적극적인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2014.10)



[1]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의 경우, 특별한 인용이 없는 출전을 밝히지 않는다.

[2] 한국어판 Wikipedia(http://ko.wikipedia.org) H.O.T.항목

[3] 한국어판 Wikipedia 항목.

[4] 한국어판 Wikipedia 강남스타일 항목.

[5] Charles BAUDELAIRE, Journaux intimes, in Œuvres Complètes I - texte établi, présenté et annoté par Claude Pichois (coll.: Pleiade), Paris: Gallimard, 1975, p.649.

[6] Roland BARTHES, L'empire des signes, coll. Sentiers de la création, Skira, 1970.

[7] 한국어판 위키피디어의 겨울연가 항목.

[8] 홍석경,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 시대의 한류』, 서울: 한울, 2013, 특히 5~8.

[9] 같은 , p.261에서 재인용.

[10] 같은 , pp.263-4.

[11] 같은 , p.282.

[12] 나는 2000년대 초엽, 영화 전문잡지인 『카이에 시네마Cahiers du Cinéma』와 대표적 일간지 『르 몽드Le Monde』가 김기덕·홍상수 영화에 각별히 주목하면서 이들의 영화가 파노프스키Panofsky 미학관의 핵심을 뚫었다는 기사를 내보낸 읽은 적이 있다. 오래된 일이라 출전을 찾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