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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선생의 작품을 읽어 온 나의 짧은 역사

비평쟁이 괴리 2024. 7. 9. 17:39

1972년 새해의 겨울,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참으로 귀하게 얻은 휴식 속에서 나는 한국문학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삼중당에서 나온 ‘한국대표문학전집’을 합격 기념으로 부모님께 받은 덕분이었다. 12권에 담긴 그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다 흥미진진하였다. 박종화 선생의 『금삼의 피』같은 통속역사소설도 박진하였고, 이상과 장용학의 난해한 의식의 흐름도 내 전두엽을 왕성히 발동시키고 있었다. 이 시기의 독서가 결국 나를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한 최초 원인이 되었다.
제 6권이 ‘심훈•황순원’편이었고, 거기에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일월』그리고 단편 소설 약간이 수록되어 있었다. 내가 왜 특히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 매혹되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아마도 동호, 현태, 윤구 세 친구의 행로가 그렇게 달라지게 된 사정에 호기심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로서는 현태의 자멸적 광기와 동호의 집요한 우유부단함과 윤구의 야비한 실속주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세 인물의 삶의 배경이 된 전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사건의 추이가 궁금해서 마음의 목을 의식의 고개 밖으로 잔뜩 빼고 있었다. 내가 결코 겪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그런 삶들 속에서 나는 인생의 비밀을 캐려고, 머리등은 못 단 채로, 달려 든 광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황순원 선생의 작품에 강렬한 관심을 갖게 된 건 「집」을 읽었을 때였다. 황순원 선생의 ‘고희기념무크지’ 『말과 삶과 자유』(1985)에 한 꼭지 쓰라고 해서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찾아낸 소설이었다. 황순원 소설이 문장과 구성은 아름다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건 당시나 지금이나 이상한 고정관념으로 상존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입증해 줄 수 있는 증거를 수다히 담고 있는 작품이 「집」이었다. 해방기의 황순원 소설은 사회성이 짙다, 는 얘기는 이미 염무웅 선생의 글에서 읽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글에서 소개된 행동주의적 작품들보다 「집」이 해방 후 격변 속에 휩싸인 한국사회의 심층을 묘파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러한 판단의 곡절을 써서 「현실의 구조화」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당시 내가 공부하고 있었던 뤼시엥 골드만의 ‘구조적 상동관계’라는 개념을 단순히 반영론적으로가 아니라 집단무의식의 조명이라는 차원에서, 말 그대로 생산적으로 조명해 보는 체험을 직접 겪었으니, 나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글을 발표하고 얼마 후, 나는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증거를 나열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것들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일을 너무 소홀히 하여, 글이 매우 지저분해졌기 때문이었다. 구조화라는 이름으로 구조가 부실한 글을 만들었으니 창피한 일이었다.
2000년 가을에 국문과로 직장을 옮긴 후 나는 황순원 소설을 다시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그리고 황순원 문학의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문제의 심리적 형상화라는 걸 깨달을 수가 있었다. 어떤 작품도 현실에 대한 통찰을 소홀히 한 게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선생이 쓰신 시를 읽으면서 예술과 삶이 하나로 농축되는 현장을 맞닥뜨리고 깜짝 놀랐다. 1937년에 상자된 『골동품』에 수록된 적은 시편들은 하나하나가 시의 본질을 현시하고 있었다. 가령 첫 시, 「종달새」의 “이 점은 / 넓이와 소리와 깊이와 움직임이 있다.”와 “종달새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저귄다”라는 산문적인 문장을 비교해 보자. 후자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하늘을 쳐다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시를 뚫어지게 쳐다보게 할지니, 왜냐하면 저 언어 조직 자체가 종달새 모습을 그대로 실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순원 시의 이 미학성은, 1930년대의 한국어가 언문일치로부터 탈출해 미적 지평에 올라서는 데 이론적으로나(『문장강화』) 실천적으로(『무서록』) 기여한 이태준의 미문주의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달랐다. 이태준과 김용준의 미적 언어는 장식으로서의 미문이었으나, 『골동품』의 시편들의 아름다움은 언어 안에 자유를 내장시키는 언어적 세공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황순원 선생의 시는 오히려 이상 시의 ‘난삽함’과 더 친연성이 있다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황순원 선생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으로 몸을 떨었던 것이다. 그 전율을 잊을 수 없어서 나는 항상 그이에 대한 글을 뭐든지 써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닥친 일들이 그럴 시간을 허락지 않았다. 오, 하늘이여! 내게 그이의 글을 음미할 한 모금의 시간을 주셨다면 부디 그를 반추할 겨를 한 짬도 허락해주소서.(20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