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한국문학의 파노라마 본문
※ 아래 글은 프랑스의 한국문학전문출판사 DeCrescenzo에서 발행하는 웹진, Keulmadang 2016년 봄호에 실린 글이다. Keulmadang의 주소는 https://keulmadang.com/이다.
1. 한국 현대문학의 탄생과 계몽의 변증법
한국 현대문학은 오늘날 우리가 ‘모더니티’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는 서양 문물 혹은 서양적 존재양식의 유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 한반도에는 독자적인 언어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과 많은 점에서 달랐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모더니티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언어문화장champs des culture langagières은 곧바로 서양적인 방식으로 개편되게 되었다. 서양의 문학 개념 및 문학 양식이 유입된 경로는 대략 세 가지였다. 하나는 18세기경부터 시작된 청나라를 통하는 길이었다.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조선 지식인들이 서양 문물에 접하고 생각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글로 표현하였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대표될 수 있는 이 경로를 통해, ‘물질적인 것’의 위력, 과학적 지식, ‘개인’의 관념 등에 조선 지식인들은 눈을 뜨게 되었다.
두 번째 경로는 서양 선교사들에 의한 종교적 경로였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낯선 땅에 이식시키기 위해 토착의 정신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였다. 그래서 일반 민간인들에게 보급되어 있었으며 얼마 후 국가 공용어로 격상하게 될 한국어문자인 ‘한글’로 성경과 찬송가를 만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한국의 언어에 서양의 사유 양식이 스며들어가 토착적인 생각과 결합해 정신의 화학 변화를 일으켰다. 이 서양적인 생각과 토착적인 생각의 혼합의 제반 양상을 우리는 충분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 그런 혼합이 화농된 두 가지 경우를 볼 수가 있다. 하나는 19세기 말에 등장한 ‘동학’으로서, 그 기본 정신은 ‘인내천(人乃天)’이다. 그 이전에 동양인들에게 수직적 개념으로서의 ‘하늘’, 즉 절대자로서의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학이 일어날 즈음에서 그런 생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서양적 종교에 근본적으로 내재한 절대적 타자와의 ‘단절’의 관념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관념이 형성된 것이다. 이 생각을 통해서 동학교도들은 탐관오리들을 징치하는 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서양의 종교, 즉 기독교는 한국인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런데 ‘기복신앙’과 ‘부흥회’(신령과의 공감)의 형태를 띰으로써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력했던 것은 젊은 지식청년들이 일본을 경유해서 수입한 모더니티였다. 이 경로를 통해 서양의 제반 문화형식들이 원형 그대로 들여오는 방식으로 이식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수입된 것들이 오늘의 한국문학의 근본 형식들로 자리잡았다. 오늘의 한국문학을 가르는 가장 기본적인 장르, 시, 소설, 희곡, 수필은 일본 유학파를 통해서 들어와서 구축되었다. 이 장르들이 정착되기 위해서 한국의 지식인들은 두 가지 기초를 우선 해결해야 했다. 우선, 새로운 공용어로 설정된 한국어 문자, 즉 한글을 확립하고 보급해야 했다. 문맹퇴치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문학은 무엇보다도 ‘어문일치’의 정신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정신세계에 걸맞는 적절한 한국어 표현이 개발되어야 했다. 가령 ‘인칭대명사’는 한국어에는 본래 없던 문법적 단위였다. 현대 단편소설을 개척한 김동인은 그 인칭대명사들을 자신이 발명했다고 주장하곤 했다.
최초의 현대문학은 문학 고유의 자율성에 대한 추구보다는 당시 조선인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그 시대적 과제는 모더니티의 정신적 가치와 직결되었으니, ‘자유’와 ‘자주’가 핵심적인 관념이었다. 이 기저 관념들로부터 ‘자유연애’에 대한 열풍, 어느 평론가가 ‘새것 콤플렉스’라고 지적한 신문물에 대한 무차별적인 열광이 태어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론 자유로운 주체의 존재론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별의 상황에 직면하여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 부”(「님의 침묵」, 1926)은 한용운의 역설적 세계관과 자기를 버리고 떠나는 연인 앞에 사랑의 징표였던 꽃을 뜯어 뿌리면서 “사뿐히 지려 밟고[짓밟고] 가보”(「진달래꽃」, 1925)라는 내기를 던지는 김소월의 투신적(投身的) 도전은 그 고민으로부터 일궈낸 새로운 정신적 자세였다. 또한 한반도는 모더니티의 매개자였던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다. 모더니티에 대한 열광은 동시에 민족의 자주성의 회복에 대한 의지로 연결되었다. 조선 사람의 개명(réveil), 식민지 생활에 대한 비판적 묘사, 조선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관심들이 문학적 주제가 되었다.
1930년대 들어 문학의 자율성이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문학은 사상의 전달이기보다 무엇보다 미의 표현, 즉 예술이어야 했다. 어문일치의 정신이 문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였다. 그로부터 이상의 초현실주의적 실험, 정지용의 ‘감정의 절제’와 승화로서의 근대시, 근대적 문물을 하나의 풍경으로 치환한 박태원 소설의 문학고고학, 서정주 시의 탐미주의 등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문학 정신이 채 개화하기도 전에 한국문학은 자신의 질료를 박탈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미 중국과 동남아를 침공하여 패권국가의 야욕을 드러낸 일본은 진주만 공습(1941)과 함께 세계 대전의 도가니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전쟁의 승리를 위해 모든 물자와 정신을 총동원해야 했다. 언어는 일본어로 단일화되었고, 조선어는 일상의 영역에서도 금지되었다. 이름도 일본식으로 개명해야 했다. 일본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젊은 시인 윤동주는 그 사실을 「참회록」이라는 시로 기록하였다. 그는 3년 후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잡혀가 해방을 얼마 앞두고 옥사하게 된다.
2. 비판과 내성,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고, 민주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서 한국문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어서 조선인들은 비로소 독립국으로의 문고리를 쥐게 되었다. 그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갈 것은 조선 사람들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해방은 그들이 쟁취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조선인들은 독립국가를 건설할 역량이 미비한 상태였다. 곧바로 한반도는 외세의 영향력에 휘둘리게 되었다.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이 두 개의 이데올로기로 분열되면서 한반도 역시 두 개의 영역으로 분단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게 된다. 세계전쟁사상 민간인 사상자가 특별히 많은 전쟁으로 기록될 그 ‘동족상잔’ 속에서 한국인들은 매순간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였으며 동시에 산다는 것의 하찮음을 확인해야 했다. ‘실존’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회자된 것은 그 때문이었으며, 또한 수난 의식과 잉여 인간으로서의 자조적 감정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러나 어쨌든 이 부정적 감정들도 새로운 도약élan vital을 위한 탄성에너지résilience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반쪽으로서나마 민주공화국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며, 1950년대 말 즈음엔 문맹율이 거의 제로에 육박하는 높은 문해력을 가지면서 생활과 사유와 행동의 매개자로서의 자국어체계를 구축하였다. 이 자국어의 확립은 이후 한국문학의 독자적 생장에 가장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었다. 실제로 해방을 전후해 출생하였고 한국어를 존재의 양식으로 삼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면서 자주적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한껏 기르고 있었다. 그들이 대학생이 되자 그들은 당시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켰다. 1960년 4월 19일 점화된 혁명으로서, 한국인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제부터 4.19세대라고 불리게 될 이 세대로부터 새로운 문학이 태어날 것이다.
4.19세대를 이끈 이념은 서양의 근대사회가 그 모형을 제시한 민주주의의 그것이었다. 서양 교양 시민citoyen de l’esprit cultivé의 생각과 삶을 통째로 한국인의 아비투스habitus로 만드는 것, 그것이 4.19세대의 꿈이었다. 그들은 교과서를 통해 학습한 모더니티의 진정한 주인이기를 소망하였다. 그러한 꿈을 표현한 최초의 작품이 최인훈의 『광장』이었다. 주인공 ‘이명준’은 『적과 흑』의 쥘리엥 소렐, 『사라진 환상Illusions perdus』의 뤼시엥 드 뤼방프레Lucien de Rubempré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진정한 자유인임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숱한 오류와 허위를 포함해 어떤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모든 소설의 결말이 그렇듯 그의 행동은 허망한 실패로 귀결하지만 그가 남긴 족적만큼은 이후 내내 한국인에게 삶의 지표이자 생각의 이정표로 작용하게 된다(1960년 말에 처음 출간된 이 소설은 2015년 초에 187쇄를 기록하였다.) 곧 이어서 김승옥이 자기만의 세계는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감각의 충일성 속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일련의 소설을 발표하여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청준은 한국전쟁 속에서 동료를 살해하고 살아 돌아 온 귀환병의 이야기를 담은 「병신과 머저리」를 비롯하여 실존의 진정한 표정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시에서는 4.19세대보다 조금 앞섰지만 누구보다도 4.19의 정신적 이상의 최고치에 근접한 김수영이 “혁명은 상대적 완전을, 그러나 시는 절대적 완전을 수행”(1960년6월17일 일기)한다는 명제와 더불어 ‘끝없는 갱신’으로서의 시들을 발표하였다.
한데, 4.19 세대의 이상이 달성되기에는 한국의 조건은 여러 가지로 열악했다. 이듬해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4.19 혁명을 통해 세워진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군부가 권력을 쥐게 된다. 5.16 쿠데타 주역들과 4.19 세대는 공유하는 면이 있었다. 근대화(modernisation)가 그것이었다. 다만 4.19세대는 전면적 근대화를 지향했던 데 비해 5.16 세력은 경제 근대화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여타의 영역에서의 독재를 정당화하였다. 4.19 세대의 일부는 5.16세력이 세운 제3공화국의 정치에 합류하였다. 5.16 세력의 독재를 용납할 수 없었던 나머지 4.19 세대는 문화 공간으로 이동하여 하버마스적 의미에서의 ‘공공영역sphère public’을 구축하였고, 정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다양한 모색에 몰두하게 된다. 이 공공영역의 존재는 초고속의 경제성장이라는 화려한 외관을 쓴 독재 체제에 대한 각종 저항들의 논리적 원천으로 기능하면서,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각성과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달구게 된다.
이 비판적 성찰의 영역을 주도한 것은 4.19 세대가 편집한 두 계간지, 『창작과 비평』(1966년 창간)과 『문학과 지성』(1972년 창간)이었다. 이 두 계간지를 굴대로 해서 1970년대의 문학이 아폴로의 마차처럼 굴러갔으니, 한편으론 문둥병 환자들의 생존기를 통해 자유와 사랑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지배와 피지배의 정치역학으로 끌고 간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 발레리나의 도약에서 “마룻장에서 새들을 꺼내는”(「화음」, 1965) 마술을 본 정현종 및 황동규의 시들의 자유에 대한 탐구, 한국 지배계급의 추악상을 빈민계층의 비체적 상상력imagination abjecte으로 풍자한 김지하의 발라드(「오적」연작, 1970), 노동 계급의 부상과 저항을 소외와 투쟁의 정동affects을 동시에 품은 스타카토식 단문 문체로 표현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 등이 그 성과물들이었다.
이러한 문학적 진화와 더불어 시민민주주의는 아주 힘차게 전진하여 마침내 1979년 제 3공화국이 붕괴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민주화에 대한 사람들의 희망은 곧 또 하나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좌절당한다. 쿠데타의 주역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1980년 5월 남쪽의 대도시 ‘광주’에서 시민 학살을 자행하기까지 한다. 독재의 연장은 당시의 지식 청년들을 심각한 지적 혼란 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들은 더 이상 시민민주주의의 이상에 기대지 못하고 훨씬 더 급진적인 사유 속으로 나아간다. 한편으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이 비합법적 공간에서 들끓으면서 대학생 운동권의 저항 에너지를 증폭시킨다. 그에 상응하여 문학 역시 비판적 현실주의réalisme critique에서 민중 혁명적 문학littérature populiste으로 급진화된다. 이 경향의 대표적인 성과는 노동자 계급 출신 시인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 그리고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한 시민학살을 생생히 기록해 증언문학의 표본을 보인 임철우의 『봄날』(1987-1998) 등이다. 이 이념적 급진화의 정반대의 방향에선 언어의 급진적 해체가 일어난다. 이인성은 『낯선 시간 속으로』(1983),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 『강어귀에 섬 하나』(1999)등 꾀까다로운 소설들에서, 의식의 파동ondulation de la conscience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을 정밀한 복합구문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좌절과 저항과 타협과 일탈이 뒤엉킨 한국인의 의식 세계의 심층을 해부한다. 최윤은 정치사회적 좌절 속에 놓이면서 공황적 상태에 빠진 의식의 부유를 환몽적으로 처리하는 일련의 소설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와 『회색눈사람』(1992)을 발표한다. 시 쪽에서는 이성복이 정치적 억압의 자발적 수용과 유복한 물질적 향락 사이에 놓인 1980년대 한국인들의 부황한 정서를 치욕의 상상력으로 재주물remouler하고 이 치욕을 견디어내는 ‘인고endurance’의 형상들을 창조한다(『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 『남해금산』[1983]). 황지우의 시는 정치적 굴종과 항쟁의 의지를 에이젠슈타인식으로 몽타쥬하여 그로부터 튀어나오는 새로운 의식들을 채집한다(『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1985].) 김혜순은 인고와 헌신의 권화로 여겨져 왔던 한국적 여성상의 실제 생활을 해체하면서, 그것을 폭로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종을 통해서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여성주의를 탄생시킨다(『어느 별의 지옥』[1988]). 남성들이 만드는 세계는 획일화된 권위적 세계이지만 여성들은 기이하게 겹쳐진 피카소적 다중 형상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을 김혜순의 시는 실연démontrer한다(『한 잔의 붉은 거울』[2005].)
이 양 방향의 급진화는 비합법적 공간에서의 반체제 세력과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부추겨왔다. 그 결과 1987년 6월, 대학생과 시민들이 합세한 대 항쟁이 전개되었고 제5공화국은 마침내 국민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를 허용함으로써 독재정권의 막을 내리게 된다.
3. 자기 발견의 문학과 세계문학을 향하여
1987년 6월 항쟁과 더불어 한국인들은 마침내 민주적 사회를 열어 나가게 되었다. 한국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신흥 경제강국으로서 자신을 알리게 된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 이해 긴 세월을 굴종의 세월을 살았던 한국인들은 비로소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기를 발견하고 ‘자존respect de soi-mê̂me’의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소비사회의 향락이 그들 앞에 펼쳐진다. 그 즈음에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시작으로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다. 그리고 정보화사회가 익명의 개인들이 무한히 노닐 공간을 개방한다.
그때 비로소 한국인들은 공동체에 근거하지 않는 순수한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것은 급진적 이념과 급진적 해체 운동이었지만 그 열매를 따먹은 건 자아 발견의 환희를 새벽 이슬처럼 머금은 개인들이었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급진적 문학은 현실의 무대에서 점차로 사라지고 순수 개인의 세계를 탐닉하는 문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풍금이 있던 자리」(1993)와 『엄마를 부탁해』(2008)의 신경숙, 『새의 선물』의 은희경(1995)으로부터 『달려라 아비Cours papa, cours!』(2011)의 김애란이 이 흐름을 대표한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 ‘거의 30’년의 문학에는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새로운 문학적 구도가 이 기간에 형성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흐름이 만나면서,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구도 내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최초의 사건은 1990년 이문열의 「금시조」가 최윤과 파트릭 모뤼스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프랑스 언론의 눈길을 끈 것이다. 그 작품이 보여준 ‘예도’에 대한 질문이 한국문학의 고유한 특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곧 이어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보편소설미학의 시각에서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독자들의 관삼에 촉발이 되어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은하에 진입시키자는 논의들이 일어났다. 이는 아주 새로운 시각이었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은 자국어의 독자성에 기대어 생장하였다. 문학은 언어 공동체의 틀 내부에서 파악되었고, 한국에서 언어공동체는 동시에 민족공동체와 유사한 궤적을 그렸다. 따라서 문학은 언제나 민족문학의 시각에서 이해되고 이야기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민족국가의 울타리를 벗어날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중한 장애가 가로 놓여 있었다. 자국어의 울타리가 너무 튼튼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다른 언어를 생활화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전까지 한국문학을 잘 보호했던 한국어는 한국문학이 세계화되는 데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번역을 매개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번역이 곧 새로운 문화의 창조로 이어진다는 앙트완느 베르망Antoine Berman 등의 주장은 아주 놀라고도 소중한 견해이지만, 그러나 한국문학의 입장에서는 아직 배부른 생각이었다. 우선은 축자적으로 충실한 번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국문학의 상황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매개자로서의 번역이 대두되자 곧바로 번역 장려 프로그램이 필요해졌다. 다행히도 한국의 사설기관(『대산문화재단』)과 국영기관(『한국문학 번역원』)이 번역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 지원 덕택에 좋은 번역가들이 양성되기 시작해 점점 영역을 넓혀 나갔다. 한국의 작가, 시인들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쏙쏙 알리게 되었다. 민주화 투쟁에서 항상 자신의 이름을 올렸던 시인 고은이 여러 세계 시인대회에서 특별한 낭송법과 그만의 고유한 ‘부사성의 시학’으로 세계 시단에 한국시의 특이성을 선 보였으며, 김혜순은 특유의 여성 시학이 외국 전문 독자들의 눈에 띠어 런던 올림픽 기념 세계시인대회에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초청되었다.
1990년 이후 아주 많은 작가, 시인들의 작품이, 특히 소설 쪽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를 비롯,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양으로 보자면 앞에서 언급했던, 현재 주류를 형성하고 작가, 시인들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세계 독자들의 반응으로 보자면, 개인 탐구 경향의 작품들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더 주목을 끌었다. 2004년 번역 출간된 황석영의 『손님』(2001)은, 한국전쟁 직전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기독교도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살육을 다룬 소설이었는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06년 한불수교 120주년을 맞아 프랑스 문인협회 사무실에서 한불작가들이 좌담을 가졌을 때, 르 클레지오씨는 한국문학이 프랑스 작가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앙가쥬망을 다시 일깨워주었다고 언급하였다. 다른 한편 성과 속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던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 (2000년 출간, 2006년 번역)이 한국문학의 정신적 모색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인 그의 새로운 장편 『지상의 노래』(2012) 역시, 세속의 추악함에 대한 성스런 각성의 가능성을 모색한 소설로서, 한국문학의 중요한 성과로 인정되리라 기대된다. 최근 미국에서 주목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년 출간, 2015년 번역)는 성적 욕망과 무위로서의 저항 사이의 오해가 빚어난 특이한 그로테스크로서 이 또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도전으로서 읽혀야 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한국문학은 거의 30여 년간의 개인화 경향을 청산할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점점 소중해지고 있는 문학의 기능은 반성적 기능이다. 삶을 되돌아보고 그 의미를 묻는 것, 그것을 문학만큼 훌륭히 해낸 문화예술이 없었다. 오늘의 새로운 디지털 문화들도 막무가내식 즐김의 문화보다는 반성적 기능과 결합될 때 미적 가치와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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