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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황당한 실수 또 하나

비평쟁이 괴리 2015. 8. 11. 12:39

이사한 후 책 정리를 하던 중,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이소연 역, 민음사, 2008)가 눈에 띄길래 반가운 마음에 다시 읽어보다가 문득 스탕달과 먼지구름으로서의 지식에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에세이가 거론된 걸 확인하였다. 이 에세이는 내가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의 서문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 바로 그 글이었는데, 놀랍게도 제목이 달랐다. 부랴부랴 원문을 찾아봤더니, 내가 틀렸다. 원 제목은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데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다 On échoue toujours à parler de ce qu’on aime(Tel Quel, No 85, Automne 1980)인데, 나는 내 책의 서문에서 한 대목을 제사로 쓰고는 각주에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내기를 걸고는 좌절하는 게 사람 일이다라고 제목을 달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해 보니, 예전에 노트해 두었던 것을 원문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데 문제가 있었다. “On échoue toujours à parier sur ce qu’on aime”라고 제목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종이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노트하는 순간 일종의 주관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지 모르겠으나, ‘l’‘i’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착각은 곧 전치사에 대한 착각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리라. 조금만 꼼꼼히 읽었더라면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었던 오류였으나 30년 전의 나는 어설픈 외국어 수준을 가지고 정신이 반쯤 나갈 정도로 글의 숲 사이를 말벌처럼 날아다니던 천둥 벌거숭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육신의 성향을 버리지 못해 오늘날까지도 한 번 더 뒤져보지도 않은 채로, 타인의 멋진 말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우쭐해서, 의기양양하게도 책 앞에 떡하니 전시했던 것이다.

번듯한 풀장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묘혈을 판 줄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이미 개장을 한 후라서 돌이키기가 난감하게 된 꼴이다. 앞으로도 이런 실수들이 수다히 발견될 것이다. 내가 뿌린 씨앗이고 내가 캐내야 할 깜부기이다.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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