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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불안의 원천.... -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사랑, 불안의 원천.... -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

비평쟁이 괴리 2022. 4. 22. 03:08

※ 아래 글은 2022년 동인문학상 정기독회 제 5회(2022년 3월)에서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사랑, 불안의 원천이자 불안을 극복할 유일한 방책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문학동네, 2022.02)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들로 수런거린다. 9편의 작품에 불안이라는 단어가 23번 등장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어디서 또 불안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지 몰라 썩 불안해진다.

불안에 대한 대체적인 해석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위험을 감지하게 된 사람의 마음 속에 일어난 부정적 감정이다. 이 불안은 두 방향으로 나뉜다. 원인의 당사자가 자신일 때, 그 불안은 스스로 알 수 없는 어떤 충동에 대한 불안이다. 반면 원인의 당사자가 바깥의 대상이나 타인일 때, 그 불안은 타자의 정체와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불안이다. 전자는 실제 무의식적으로는 알면서도 의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걸 거부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충동과 그 충동이 가져 올 효과에 대한 불안이다. 후자의 불안은 말 그대로 몰라서생기는 불안, 즉 명명 불가능성에 대한 불안이다.

임현 소설의 불안에는 이 두 개의 불안이 포개져 있다. 상대방의 행동을 알 수 없어서 불안한데, 실은 상대방의 행동 자체가 불안으로 인한 것이다. 또한 상대방으로 인하여 생긴 나의 불안은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는 예감으로 자신의 충동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도경도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게 당장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어쩌면 내가 도경을 부른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줄곧 한곳만 바라보고 모른 척할 만한 이유라면 아무래도 그래서이지 않았을까. 도경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지 않았나. 본래 그래야 맞는다는 것처럼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내가 방금 해주를 부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랬으므로 다 듣고 있지만 애써 안 들리는 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난처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텐데, 다른 것 없이 오직 내가 도경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유일한 원인이지 않았을까.”(p.46)

 

이 불안은 화자로 하여금 자신이 나쁜 사람이고, 또 나쁜 사람으로서 무슨 일을 했을지 혹은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치솟는다. 그런데 바로 이 불안의 절벽 끝자리가 도약의 스프링보드다. 화자는 여전히 불안 속에 휩싸여 있지만 독자는 이게 사랑의 형식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랑은 타인을 끌어당겨 내 안에서 나와 하나로 만드는 일인데, 실제로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끌어당겨 상대방 안에서 나를 그와 하나로 만드는 방식으로만 실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상호적일 때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면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이 된다. 게다가 일방적 진행은 하나됨이 아니라 잡아먹고 먹히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사랑 속에서 작용하는 힘은 오로지 우력(偶力, Couple of forces)이다. 사랑하는 자들은 뱅뱅 맴돌면서 현기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랑은 재앙에 대한 불안으로 배수진을 치고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향해, 두 방향으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자세를 하며 나갈 수밖에 없다. 사랑은 불안의 원천이자 불안의 형식으로 자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불안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책인 것이다. 사랑에 신비가 있다면 이게 그것이다.

임현의 소설이 그런 사랑의 신비를 짐작하게 만드는 효력이 있다면 독자는 또한 이어서 물어봐야 하리라.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구? 어떻게 할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