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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독립과 시간 터널 효과 - 위수정의 『은의 세계』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공간 독립과 시간 터널 효과 - 위수정의 『은의 세계』

비평쟁이 괴리 2022. 4. 22. 03:09

※ 아래 글은 2022년 동인문학상 정기독회 제 5회(2022년 3월)에서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공간 독립과 시간 터널 효과

 

위수정의 은의 세계(문학동네, 2022.01)에 실린 소설들은 공간 묘사가 뛰어나다. 가령 표제작을 보자. 두 주인공이 있다. 어떤 극적인 사연이 있어서 그들은 동거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사연은 어떤 전개를 낳지 않는다. 펜의 카메라는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오래된 부부처럼 살고 있는, 무덤덤하면서도, 분명한 선을 두고 독립과 협력을 잘 조정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일상을 비춘다. 이 두 사람의 공간 사이를 비집고 여자의 동생이자 남자의 처제인 사람이 끼어든다. 진짜 처제는 아니어서 양처제라 할 수 있는 이 사람은 앞의 두 사람과 아무 것도 닮은 바가 없다. 둘은 특이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해 살고, 처제는 빈번히 직장에서 쫒겨나거나 스스로 나와서 직업을 전전한다. 둘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를 끊임없이 되새기는 사람들이고 처제는 혼자 있는 사람 같은 사람이다. 둘 중의 남자는 살림 도우미로 드나드는 처제가 가면 꼭 욕실과 부엌까지 소독제를 뿌린다. 언니는 동생을 끊임없이 흉보면서도 그를 도와준다. 그리고 이 두 종류 사람들 옆, 대각선 방향에서 유모차에 실린 강아지가 끼어들며, 그들의 기묘한 어긋남에 미묘한 질감을 준다.

오로지 여기에는 공간적 대비만 있다. 행동도, 대화도, 배경도...분명 이 공간을 낳은 시간은 있으나, 그 시간은 터널과도 같이 통과했을 뿐, 더 이상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기로 기능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러한 시간터널/공간독립 현상은, 이 시대를 불모성의 시대로 인식하는 젊은 세대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들으면 더욱 그렇다.

 

하나야, 우리도 아기 가질까?

하나가 고개를 돌려 지환을 빤히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지금 이 시대에?

지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농담. (37)

 

그러나 시대에 대한 부인은 생각의 깊이는 배제된 채로 부유한다. 다시 말해 탐구되지 않는다. 대신 쉼없이 장면들만이 바뀐다. 이 시대는 그냥 이 시대라고 규정되어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물상들과 인물들 사이의 차이도 그냥 대비되어서만은 안될 것이다.

작가도 그게 안타까운 모양이다. 인물을 빌려서, “우리에겐 없는 걸자꾸 찾는다. 그건 어디에 있을까? 돌 떨어진 풍선처럼 날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