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영상 언어와 문학 본문
※ 이 글은 『한민족어문학』, 제 55(권)( 2009.12.30)에 발표된 것이다. 후에 『문신공방 2』에 수록되었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시대의 급변으로 오늘날 영상 언어의 존재양상과 차이가 있음을 주지시키기 위함이고, 이 글을 그래도 올리는 까닭은 우선은 『문신공방 2』의 글들을 올리겠다는 약속에 의한 것이고, 다음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상과 문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I. 이미지의 지배
오늘날 이미지가 배제된 문화를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여기에서 ‘문화’란 말은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문화라는 어휘의 울타리 안에 가두는 휴식과 유희와 향유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잡사와 업무, 교육, 기타 등등 삶의 모든 부면에서 사람들의 체질과 관습과 행동을 통하여 표현되는 삶의 양상들의 총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도르노가 형식을 “침전된 내용contenu sédimenté[1]”이라고 불렀을 때와 거의 같은 의미로, 문화는 침전된 생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야에서 바라볼 때, 모두(冒頭)의 진술은 매우 심각한 무게를 갖는다. 그것은 “이미지가 배제된 삶을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와 사실상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 진술은 삶의 특정한 국면 혹은 양태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삶의 환경 자체에 대한 것이다. 요컨대 그 진술을 극단화하면 “이제 이미지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미지 없는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 “이미지는 내 인생의 모든 것”기타 등등의 이미지에 주권을 넘겨주는 온갖 재담과 악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정말 이미지의 주권souveraineté을 가리키는지는 아직은 확실치 않다. 다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미지가 삶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도달한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은 당연한 것도 아니고 바람직하다거나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또한 이런 상황은 어떤 계기로부터 촉발되어 그 나름의 필연적인 경로를 따라 진화해 온 과정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이 두 가지 의미, 즉 당연한 것이 아니지만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풀이하고 그 가능성을 운산할 때,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와 우리가 이미지와 더불어 살아갈 방법들과 이미지가 아닌 다른 문화적 질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논할 ‘문학’의 문제 역시 그러한 탐구의 집합 속에 포함되어 궁리되어야 할 것이다.
II. 매체에 힘이 붙게 된 내력과 힘의 이동
오늘날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의 출현은 ‘정보화 사회’가 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말은 몇 가지 부가 설명을 필요로 한다. 첫째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직 오늘날에만 나타난 게 아니라는 걸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미지의 지배로 말할 것 같으면 성당들과 성상(聖像)들과 성물들, 그리고 성가대가 문화의 중심에 놓여있을 때 이미 달성된 바가 있다. 성스러운 의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표상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중세는 성화들과 건축의 시대였다.
그러니까 이미지의 지배는 애초부터 만연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미지가 휘황히 번쩍이던 세상을 문자가 대체한 건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근대’ 혹은 ‘현대’, 또는 서양의 음가 그대로 ‘모더니티’라고 부르는 시대, 즉 인간이 신으로부터 세계의 중심에 놓일 권한을 가로챈 때에 와서, “이것이 저것을 죽이고[2]”(Victor Hugo), 즉 책이 건축을 살해하고 문자가 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미지가 번쩍이던 세상을 문자가 대체하였다. 그것은 당장 질문을 유발한다. 어떻게 해서 문자가 이미지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곧바로 다음 질문을 통해서 과거에 대한 복기를 넘어 현대의 문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문제는 바로, ‘정보화 사회와 더불어 이미지의 지배가 다시 시작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무엇인가?’라는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이미지가 마력을 갖는 원인으로 ‘직접성immédiateté의 효과’라는 기능을 들어왔다. 이미지는 바로 대상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폭넓은 동의를 얻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 점에서 이미지는 언어보다 훨씬 효율적인 ‘드러냄’의 능력을, 그러니까 ‘재현representation’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소쉬르가 가르쳐 주었듯, 기호sign의 물리적 존재태는 ‘기호표현signifiant’과 ‘기호내용signifié’의 자의적arbitrary 결합에 의해서 형성된다. 기호란 “무엇을 대신하는 것”인데, 대신하는 작동주는 그의 대상과 어떤 유사성의 관계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의성을 언어만큼 분명하게 증거하는 기호도 없을 것이다. 가령, ‘의자’라는 어휘와 그 발음은 실제의 ‘의자’라는 관념이나 실물의 어떤 부분도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포함한다면, 의자라는 어휘가 발음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어딘가에 앉아 있거나 앉는 동작을, 심리적이거나 물리적으로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의자’라는 소리는 그러한 경험을 결코 보장해주지 않는다[3].
중세에 이미지의 예술이, 즉 회화와 건축이 문화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는 건, 그러니까, 당연한 일로 보인다. 중세에 모든 가치는 신으로부터 발원하고 동시에 신에게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신은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것은 신성에 대한 침범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한 직후, 그에게 다가가는 마리아에게 “Noli me tangere(내게 범접치 말라)[4]”라고 말하면서 물리친 장면은 그러한 불가침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훗날 사람들이 ‘절대적 타자Autre absolu[5]’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게 될 그러한 신의 불가침성은 그러나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줄 수는 있으나 ‘경배’의 의지를 주지는 않는다. ‘경배’는 동일화에 대한 가능성 속에서만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본받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경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본받는다는 건 가장 가까이 닮으려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볼 수 없는 것을 어쨌든 보아야 하는 것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질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 내로 모셔 와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미지의 예술들이었다. 그리고 이미지의 이 놀라운 권능은 아주 오랫동안, 문자가 문화의 중심에 자리잡은 이후에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심어진 항구적 기억사항이 되었다. 샤를르 보들레르가 뒷골목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어판 서적에서, 크로우 부인Mrs. Crow이라는 사람이 진술한 “상상력imagination이 세계를 창조했으니, 그것이 세계를 지배한다[6]”와 같은 말은 그러한 옛 경험이 어디까지 이어져서 오늘의 이미지 세상을 예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매우 암시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왜 문자가 회화와 건축의 지위를 찬탈하게 되었는가? 신이 세계의 무대 뒤로 숨고 인간이 전면에 등장하는 근대로의 이행 과정과 보조를 같이한 문자의 대두는 종래의 이미지 예술이, ‘재현의 능력’이라는 그 뛰어난 기능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음을 가정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한 가정의 실마리를 우리는 바로 근대가 인간이 주체가 되고 인간의 세계 지배가 지구의 전 지역으로 발동된 시대라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한 근대란 원근법과 항해술의 시대이자 천문학과 의학을 비롯한 각종 실증과학이 폭발한 시대였다. 달리 말해 르네상스 이래,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는 한편, 그가 중심이 된 원의 원심력은 비약적으로 폭발하였다. 그것은 정보가 도달해야 할 반경을,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길이로 늘여 놓았으며, 그와 더불어, 그 원주 내에 특별한 웜홀이 패어 있지 않은 한, 그 정보의 효율적인 배포를 위한 빠른 속도를 전달 매체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바다 너머로의 세계에 뿐만 아니라, 원래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공동체의 울타리 내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신의 숨음과 더불어 예전에 하나였던 공동체의 내부가 이질적인 세계들로 분할되었고 그 이질적인 부분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신을 버린 인간은 특별한 행정 조직과 조직원을 발달시키지 않을 수 없었으니, 바로 관료체제와 그 담당층으로서의 법복귀족이 바로 그들이었다.
안으로든 밖으로든, 그게 진리의 이름으로든, 칙령의 이름으로든, 교육의 이름으로든 혹은 단순히 지식의 이름으로든, 모든 메시지는 멀리 갈 수 있어야 했고 빨리 퍼져야 했다. 이 속도와 넓이를 채우려면 그 메시지 자체가 특별한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실물성으로는 그 속도와 넓이를 충당할 수 없었던 것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밀라노에서 파리로, 루앙으로 자유롭게 옮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요컨대 실물성은 압축되어 어떤 기호로 대체될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그림은 ‘그림 목록, 제목, 축약복제판, 그림 설명’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실물을 대신해서 기호의 역할을 할 최적의 대리인은 ‘언어’였고, 그 언어는 저 옛날의 이미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진리의 수레임으로 자처하는 한, 정확성과 지속성(변질되지 않을 성질)을 갖추고 있어야 했으니, 그것을 담당할 것은 언어 중에서도 ‘문자’였다.
문자가 근대의 중심 매체로 자리잡게 된 사연이 대충 기술되었다. 그런데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정보의 수레로서의 문자가 예술적 표현의 매체로서의 역할도 겸하게 되었는가? 이 물음은 근대적인 물음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성과 속이 분리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과 진리도 분리되지 않았고 아름다움과 참됨 역시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대에서는 그것은 분리되었고 그 분리는 나누어진 몫을 담당할 새로운 영역들을 태어나게 했다.
이것은 문자 문화와 문자 예술(문학)의 분리를 가져왔다. 문자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의 지식의 보급을 담당했는데, 그러나 이제 지식은 진리를 내장했다고 미리 단정할 수 없었다. 문자 문화와 더불어 태어난 문학은 바로 지식의 진리성을 캐묻는 역할을 맡았다. 문자 문화가 인간 시대의 것이고, 인간 시대가 신적인 것을 폐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의 세계를 대신하고자 한 욕망에서 태어난 것이라면 당연히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참됨을 입증받아야 했다. 그 입증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숨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검증자의 역할을 문자문화가 그 자신에 대한 메타적 존재로서 변신함으로써 담당하였다. 그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따라서 문자문화의 지향성을 이어받으면서도 동시에 문자문화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현대 문학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이 문학에 내장되게 되었다. 문자문화의 지향성을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더욱이 그것을 참됨과 아름다움 쪽으로 끌어올릴 것이 가정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끝없는 발견과 개척의 모험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것을 우리는 ‘상상’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문학은 문자문화의 야곱으로서 전자의 장자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실제적 양태를 비판하였다. 문학이 문자문화에 던진 의혹과 가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문자문화를 지배문화로 이동시킨 모더니티의 본원적 이념, 즉 자유, 평등, 박애, 천부인권, 개성 등등이었다. 즉 근대 초엽의 문학은 모더니티의 이상에 근거해 모더니티의 실재를 비판적으로 조명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내재적인 자기 비판을 우리는 ‘반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근대 이후 문학의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기능은, 이렇게 ‘반성’과 ‘상상’이 되었다.
III. 이미지의 진화
문자가 지배적인 매체로 군림하고 있던 근대 사회에 이미지가 헛간 혹은 박물관에 갇혀 있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이미지의 세계에도 중요한 연속적인 진화가 일어났다. 사진, 영화, TV의 발명이 그것들이다. 이미지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린 것은, 역시 제일 먼저 발명된(1826) 사진이다. 사진은 처음으로 기계복제가 가능한 이미지의 존재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기계복제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우리가 가장 널리 알려진 테제는 ‘아우라의 상실’이라는 벤야민의 그것이다[7].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 게다가 벤야민의 진단과는 다르게 기계복제 시대에 아우라는 결코 상실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의 존재 양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벤야민에게 아우라가 “먼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이라고 정의되었다면, 기계복제의 상황 속에서 그것은 ‘결코 되풀이 될 수 없는 낯선 체험이 나타날 가능성의 반복적 출현’이라는 사태 속에서의 ‘낯선 체험’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8]. 게다가 이러한 ‘반복적으로 출현할 낯선 체험’은 사실 ‘사진’의 발명 당시에 즉각적으로 인지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진은 예술적 장치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활을 정돈하는 기계로서 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맥루언이 예리하게 간파했듯이 사진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그것에 열광한 것은 바로 과거를 “납작하게 눌러 보존[9]”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납작하게 누름으로써 보관의 양과 편리함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은 일종의 시간압축기제였던 것이다. 영화의 발명(1895)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발명된 영화는, 미국에서는 만화경의 형식으로 가벼운 유희의 수단으로서 개발된 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문명의 사안으로서 이해되었다. 그런데 그 문명적 사건은 우선은 예술적이라기보다 생활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언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영화에서 과거를, (사진과 달리) “부동의 형태로가 아니라, 움직임과 행동, 친숙한 몸짓들과 더불어 입술 끝에서 발화되는 말을 통해[10]” 생생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표했다. 그때 “죽음은 더 이상 절대적이길 그칠 것이다.”
요컨대 사진과 영화의 발명은 옛날의 이미지가 보유하고 있지 못했던 전파력을 보충하는 계기가 되었다. 붓에 의해 그려진 이미지와 달리 사진과 영화에 의해서 재현되니 이미지는 급속히 세상 속으로 퍼져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문자의 지위를 빼앗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지의 진화적 과정 속에는 특이하게도 이미지 기제dispositifs들의 순차적인 몰락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포착되었다. 즉 영화의 발명은 사진의 몰락을, 그리고 TV의 보편화는 영화의 위기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 몰락 속에서 사진은 ‘살아있는’ 이미지의 기능을 상실하고 ‘죽은’ 이미지로 변해갔다. 오늘날과 유사한 모습으로서는 1926년에 첫 선을 보인 TV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잡으면서 영화는 ‘사람사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걸 끝내야 했다. 오늘의 영화들이 두루 비현실적 장르들, 즉 갱스터거나 유령이거나 판타지거나 S/F로 나아가고, 그 양태 역시 극단적인 코믹, 공포, 엽기, 스펙타클로 나아가게 된 것은 일상을 TV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TV 내부에서도 이제는 드라마의 몰락이 초래되는 때에 와 있으니, 바야흐로 ‘리얼리티 쇼’(형용모순적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가 일상을 통째로 꿈의 무대 위에 올려놓아서, ‘새로운 일상’에 대한 꿈으로서의 드라마를 불요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IV. 디지털 이미지의 권능
문자가 저의 매체적 헤게모니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실제로 서서히 문화의 주변 쪽으로 밀려나게 된 것은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이다. 정보화 사회의 핵심 매질인 ‘디지털’이 그 변혁의 실질적인 원인이 되었다. 왜 디지털인가?
우선은 직전의 이미지 매체들의 기능과 경계를 살피고 디지털이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피는 게 유익할 것이다. 전파 혹은 보급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진과 영화는 ‘보관’의 기능에 엄격히 머물러 있다는 게 기본 포인트이다. 즉 삶의 차원에서 사진과 영화는 과거를 보존하는 기제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과거-현재의 시간대를 차지하는 대신 미래를 확보하지 못한다. 그런데 미래를 확보하는 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문자가 기획과 프로그래밍과 명령의 방식으로 실행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앞에서 보았던 크로우 부인의 말을 마저 듣는 게 유익해 보인다. 그녀는 이어서 말한다: “상상력이라는 말로 나는 단순히 지나치게 남용된 이 단어에 대한 범용한 정의 즉 한갓 공상fancy이라는 뜻을 부여하려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고급한 기능이며, 인간이 신과 닮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한, 신이 자신의 우주를 기획하고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 발휘하는 숭고한 힘과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도 긴밀히 관련된 ‘구성적 상상력’이다.”
보들레르가 이 진술을 인용하면서 무척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그런 능력을 갖지 않는다면 인간시대를 만들어 신을 숨어버리게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력, 즉 이미지의 권능에 대한 팡타그뤼엘적 기대는 그것이 ‘상상imagination’이라는, 즉 확정된 명사형이 아니라 기대 지평 위에서 움직이는 동사형이라는 조건을 수락한 후에 표명되는 것이다. 즉 그것이 미술이든, 영화든, 사진이든 ‘예술’, 즉 불가능성의 실행이라는 형식으로만 그러한 ‘구성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예술적 상상이 근본적으로 ‘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 즉 예술적 상상의 세계는 ‘공중정원’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바로 그것이 앞에서 말했던 “내게 범접치 말라(Noli me tangere)”의 핵심적인 의미이다. 이미지는 최대한도로 진본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지와 욕망 속에서 탄생하는 것인데, 따라서 진본의 실감을 부여하는 게 이미지의 역할인데, 그러나 그 실감은 실재와 접촉하는 경험과는 다른 것이다. 진본은 그것이 진본인 한, 언제나 인간이 이룰 사업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때고 ‘기어코’가 됐든 ‘미리’가 됐든 성취될 수는 없는 것이다. 미래는 영원히 연장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존 기제로서의 사진과 영화가 과거-현재의 회로에 갇혀 있는 한, 그들의 일상적 영향력은 애초의 기대로부터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TV는 어떠한가? TV가 사진과 영화와 달리 순전히 ‘현재’에 관여하고, ‘현재’를 드러내는 데 기여하는 건 분명하다. 이 현재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시청자를 몰고 가는 현재라서, 이 역시 맥루언이 지적했듯이, TV에 몰입하는 자는 이미 “공공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참여는 “쿨(cool)한” 것, 즉 침묵 속의 동의에 근거한 것이다[11]. 기획과 입안과 시행 수칙을 하달하는 존재는 시청자와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 이미지 매체를 삶의 매체로서 변신시키는 데 실패한 이유일 것이다. 때문에 문자가 여전히 중심 매체로서 작동하는 것은 당연한 사정일 것이다. 즉 부동산 시가와 공과금은 문서로 읽고 잠깐의 휴식은 홈 시어터에서 누리는 것이며, 새집에 들어갈 꿈은 모델-하우스에 가서 채우려 하지만 누구나 모델 하우스와 실제의 아파트가 매우 다르다는 것은 다 아는 것이다. 여하튼, 문자가 삶의 매체로서 기능한다고 할 때, 그것은 문자가 과거-현재의 회로를 미래에까지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게 사실인가? 우리는 방금 앞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과 프로그래밍과 명령의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이다. 바로 ‘재현’이. 다시 말해 문자가 미래를 확보하는 방식은 ‘관념적 선취’의 방식으로만 하는 것이고, 결코 거기에 실재를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실재와 실감을 부여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수단으로써―외재적이든 내재적이든, 즉 보충 그림이든 혹은 비유이든―끌어오는 일이 빈번해지는데, 그 전유의 과정은 바로 문학이 실행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문학적 실천을 통해서 근본적인 반성의 저울추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은 바로 이 ‘불가능성’의 한계를 철폐해 버린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생활과 예술의 분리가 없다. 디지털은 이미지를 창출하되, 그것을 보관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기획의 형식으로 한다. 즉 디지털은 미래를 ‘재현적’으로 선취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우선 디지털은 매체가 아니라 매질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12] 그렇다는 것은 매체의 수준에서 보면 디지털은 하나의 원소에 지나지 않는데, 만일 그 원소가 매체의 변화에 영향을 준다면, 그때 그 원소는 원소단위라기보다는 일종의 화학반응식, 즉 알고리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음, 디지털의 알고리즘은 모든 물질을 최소정보단위로 분해한 다음 다시 합성해서 원본과는 전혀 무관한 다른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으로의 변신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변화의 경계가 철폐된 것이다. 디지털의 나날의 구호가 “All is possible”이 된 건 이런 사정에 의한다. 마지막으로 이 최소정보단위(bit)는 순수한 수학적 기호이다. 0 혹은 1인 것이다. 이 최소정보단위는 일체의 물질성을 갖지 않는다. 이것이 일반적인 화학반응과 디지털의 분해-합성을 다르게 하는 면인데, 그럼으로써 디지털적 알고리즘은 시공간의 저항을 받지 않는다. 즉 모든 것은 원리적으로 실시간으로 전지구적으로 이루어진다[13]. 그리고 이 실시간의 작용-반작용 때문에, 주체는 보이지 않고 운동만이 빛나게 된다. 그 운동의 빛남이 쌍방향성interacitivy의 환영을 불러 일으킨다.
어쨌든 이 알고리즘을 통해 디지털은 과거-현재의 회로를 열어 미래로 연결시킨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향한 ‘삶’의 기획이 재현적으로, 즉 ‘예술’로서 실행된다. 다시 말해 앞으로 있을 일이 미리 상연된다. 이 디지털은 매질로서 모든 매체로 침투해 들어간다. 그것은 영화에도 들어가고 텍스트에도 들어간다. 디지털을 통해 영화에는 미래가 충만한다. 그러나 사진에는 층분히 들어가지 못한 듯하다. 사진이 죽은 것은 그 충만한 미래를 받아들일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영화가 살아남은 것은 그 충만한 미래로 자신의 현실을 대체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댓가로 오늘의 영화는 현실의 공간을 극도로 축소시켜 버렸다. 문자에는 안 들어간 것 같지만 실은 문자에도 들어간다. ‘HTML’이나, ‘Basic’, ‘C++’ 등의 특별한 프로토콜 혹은 특별한 언어체를 통해서. 그런데 디지털적 방식으로 재편된 문자체계, 즉 하이퍼텍스트는 문자로서 존재하기보다 이미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순수한 문자는 뒤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 디지털적인 것이 우리가 종종 영상언어의 지배라고 말할 때의 ‘영상언어’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때 영상은 ‘재현적’이라는 뜻을 갖는 것으로서 실제의 영화 이미지나 시각적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다. 실제의 영화 이미지나 시각적 이미지는 디지털 이미지에 포함될 수도 있고,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방금 보았듯 순수한 문자들을 통한 이미지 형성이나 청각적 이미지들도 디지털 이미지에 포함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V. 몰락한 것들만의 재생 가능성
디지털 이미지의 힘은 상상이 극대화되어 반성의 경계를 넘어가 버린다는 데에 있다. 이때 상상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다. 새 삶을 향해 가려는 동작이 아니라, 새 삶 속을 유영하는 숨가쁘거나 나른한 도취라는 것이다. 이 디지털의 환상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우리는 거의 무의지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곳에서는 삶과 예술의 경계도 무너지고, 주체와 대상의 구분도 사라진다. 모두가 이곳에서는 저마다 개성있는 주체로서 뛰어 노는 듯하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저마다 제 마음대로 투자하고 따고 거두듯이(때때로 파산하기도 하듯이.)
그러나 이러한 환상의 공간은 특별한 환상화 과정에 근거하면서도 그 환상화 과정을 은폐한 채로 나타난다. 즉 디지털 공간의 제작 과정, 혹은 디지털 향유 공간의 기반 구축 과정을 삭제한 상태에서 디지털 공간만이 표면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세 가지 문제를 유발한다. 첫째, 이 디지털 공간의 배후의 구축자에 대해 디지털 향유자는 무지하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 앎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지 모르지만, 향유의 질료, 향유의 방식, 범위, 가능성은 모두 그 구축자가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삶과 예술에, 노동과 유희에 동시에 작용하는 디지털 공간이 실제로 삶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통로가 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삶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작용할 실제의 삶이 이미 운산된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어떤 위험을 야기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의 시장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모기지론’ 사태는 가상대출의 무한한 곡예에 실제의 현금이 제동을 가했을 때 어떤 재앙이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셋째, 디지털 공간에서는 예술적 작업의 욕망과 그 기대와 성취는 잘 보이지만, 그 욕망이 불붙게 된 내력과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과 그 욕망의 참됨에 대한 물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디지털 공간의 예술성은 종종 중독의 대상이 된다. 폐인들이 그곳으로부터 나오지만, 이 페인들이 자신들을 폐인화한 공간에 대한 어떤 식의 전복적 실천을 할지는 미지로 남는다.
문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디지털의 진군 이래 패주와 패주를 거듭한 문학이 여전히 낡은 무기와 낡은 전술로, 장렬한 산화를 그리며, 투쟁할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적인 것과 협력하여 생존을 구할 것인가? 가령 ‘스토리텔링’이라든가 ‘스토리은행’등의 용어를 통해 그런 협력이 일정한 생산성을 가질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다만 그러한 생산성에는 문학 본래의 기능, 즉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진실성을 질문하고 회의하는 반성적 기능이 삭제되어 있다. 그 반성이 없다면 다른 생도 없을 것이다. 즉 모든 디지털적 환상의 향유는 생의 쳇바퀴를 끝없이 맴도는 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전략이 필요하리라. 그 전략은 어쩌면 이미지들과의 협력을 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앞에서 이미지의 진화 과정에서 이미지들은 순차적으로 몰락의 운명을 밟는다고. 어쩐면 오늘날 디지털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적 이미지 매체들도 언젠가 같은 운명에 처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지는 그대로 두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이미 순차적인 단계를 통해 몰락하는 이미지들을 보았던 적이 있다. 사진에서 영화를 거쳐 ‘TV 속의 허구’로 가며 일어나는.
이 몰락한 것들은 몰락 덕분에, 디지털 공간(이미지 지배 공간)의 잔여물로 남아 디지털 공간을 교란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미 사진은 자신의 죽음을 거꾸로 돌려 죽음의 예술로서의 사진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였다(롤랑 바르트[14].) 영화는 디지털 영상에 맞서, 카메라로 찍은 영상의 피땀어린 초라함을 가지고 혹은 그가 벌인 불가능성과의 사투를 통해, 영상이 제 안에 새겨 둔 노동과 고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 무엇보다도 디지털 이미지의 화려한 순환이 사실상 현재의 끝모르는 향유에 지나지 않는다면, 영화는 그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다른 ‘시간’의 존재에 대한 환기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시간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 때문에 더더욱 강렬히 타오르는 다른 시간을 ‘법접’하고픈 욕망을 품고.
이렇게 이미지들이 자신의 죽음과 자신의 해체를 통해 변신을, 완전한 탈태를 실행하고자 한다면, 그 작업은 또한 문학의 작업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가 자신의 재현성을 ‘해체’하는 가운데 자기 변신을 꾀한다면, 문학은 그 특유의 반성적 기능을 다시 상상의 극단 속에 올려놓음으로써 죽음 충동과 생 충동을 맞물리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반성 자체가 은연중에 취하는 위치, 즉 초자아적 위치로부터 스스로 떨어져 나올 때 이미지의 해체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생기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은 유보하기로 한다. (2009.11)
참고문헌
Th. Adorno, Théorie esthétique, traduit de l'allemand par Marc Jimenez, Paris: Klincksieck, 1974
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in OEuvres complètes, T.3, 1974-1980, Seuil, 1995
Ch. Baudelaire, OEuvres complètes II ,Paris : Gallimard, 1975
Walter Benjamin,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역, 서울 : 민음사, 1983
Victor Hugo, Notre-dame de Paris, Gallimard/Pléiade, 1975
Emmanuel Lévinas, Totalité et infini - Essais sur l'extériorité, Kluwer Academic, 1971
Marshall Mc Luhan, Pour comprendre les média, Seuil, 1968
Jean-Luc Nancy, Au fond des images, Galilée, 2003
모리스 블랑쇼/장-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박준상 옮김, 서울 : 문학과지성사, 2005
Hans Ulrich GUMBRECHT & Michael MARRINAN (Ed) : Mapping Benjamin - The Work of Art in The Digital Age, Stanford, California :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Il était une fois le Cinéma, 100 films vus par la presse de l'époque des frères Lumière à Kusturica, 4e trimestre 1995
[1] Th. Adorno, Théorie esthétique, traduit de l'allemand par Marc Jimenez, Paris: Klincksieck, 1974, p.14
[2] Nos lectrices nous pardonneront de nous arrêter un moment pour chercher quelle pouvait être la pensée qui se dérobait sous ces paroles énigmatiques de l'archidiacre: « Ceci tuera cela. Le livre tuera l'édifice ». “친애하는 독자들이시여, 잠시 멈춰서 부주교의 수수께끼 같은 저 말이 무슨 뜻을 감추고 있는지 살펴보는 걸 용서해주시오. 그러니까 그는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야. 책이 건축을 살해할 것이야"라고 말했답니다.” - Victor Hugo, Notre-dame de Paris
[3] 이미지와 문자의 이런 차이에 대한 탐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Jean-Luc Nancy의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차이는 명백하다. 텍스트는 의미를 제시하고, 이미지는 형태를 제시한다”와 같은 진술은 가장 일반적 생각을 대변한다. - Jean-Luc Nancy, Au fond des images, Galilée, 2003, p.121.
[4] 「요한 복음」 20-17
[5] ‘절대적 타자’에 대한 현대 철학자들의 무수한 언급 중, 그 불가침성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글은 다음일 것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이타성’의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불완전성들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라는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확하게 말해, 완전성은 개념화를 넘어서고, 개념을 넘쳐나며, [건널 수 없는] 거리를 가리킨다: 형이상적 이타성을 가능케 하는 이상화는 ‘한계’로의 이행이다. 즉 어떤 초월, 절대적으로 타자인 타자로의 이행이라는 뜻으로서의 초월이다. 완전성의 관념은 ‘무한’의 관념이다.”- Emmanuel Lévinas, Totalité et infini - Essais sur l'extériorité, Kluwer Academic, 1971, p.31; 혹은 이런 발언도 주의해 읽을 필요가 있다: “절대 타자가 개입된 모든 관계에서 사실 관계는 부재하며, 넘을 수 없는 것을 의지하는 것으로나 더 나아가 욕망하는 것으로도 넘어 간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모리스 블랑쇼, 「밝힐 수 없는 공동체」, in 모리스 블랑쇼/장-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 마주한 공동체』, 박준상 옮김, 서울 : 문학과지성사, 2005, pp.66-67
[6] Ch. Baudelaire, 「1859년의 살롱」, OEuvres complètes II ,Paris : Gallimard, 1975, p.1393.
[7] Walter Benjamin,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역, 서울 : 민음사, 1983
[8] 기계복제시대에 아우라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을, 졸고, 「다시 문학성을 논한다 2」( 『문학과사회』 1992년 가을; 『문학이라는 것의 욕망』, 서울:역락, 2005)에서 언급한 바 있다. 21세기 들어, 벤야민의 진단이 근본적인 착오에 기인한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책이 출간되었으니, 이도 참조할 만하다: Hans Ulrich GUMBRECHT & Michael MARRINAN (Ed) : Mapping Benjamin - The Work of Art in The Digital Age, Stanford, California :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9] Marshall Mc Luhan, Pour comprendre les média, Seuil, 1968, pp.221-228 참조.
[10] La Poste, 1895년 11월 30일자, in Il était une fois le Cinéma, 100 films vus par la presse de l'époque des frères Lumière à Kusturica, 4e trimestre 1995, p.6
[11] 이에 대해서는, Marshall Mc Luhan, 앞의 책, pp. 251-264 참조
[12] 이 점을 처음 내게 일깨워준 이는 시인 김정환이었다. 그는 디지털의 작동방식을 전혀 모르는 데도 직관적으로 그 점을 짚어내었다.
[13] ‘원리적으로’라는 말에 유의하기 바란다. 실은 누군가는 그 뒤에서 알고리즘을 짜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디지털의 실시간적 운동이 작동하려면, 그 알고리즘을 짜는 시간의 경과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14] 롤랑 바르트는 통상적으로 활용되는 기능(기록과 보존, 형상기억)을 통해 구현되는 사진의 존재론과 그와는 달리 지극히 우발적이고 단편적이며, 파열적인 나타남으로서의 존재론을 구별하고, 전자를 스튜디움(Studium), 후자를 푼크툼(Punctum)이라 명명한다. 이 명명을 통해서 그는, 효용적 가치를 가진 사진에 대항하여 일상생활에 대한 전복으로서의 사진 특유의 예술미학을 세우고 있는 셈인데, 그 사진 미학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스튜디움이 제공하는 일상생활의 거짓맥락화 혹은 맥락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우리의 자동화된 인식과 감각을 떼내어, 일상생활을 무맥락 혹은 죽음으로 되돌림으로써 삶에 대한 근본적인 충격적 지각과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내 사진 속에서 내가 겨냥하는 것, 내가 내 사진을 바라보는 데에 작용하는 의도,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저 사진의 ‘본성eï̈dos’이다.”(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in OEuvres complètes, T.3, 1974-1980, Seuil, 1995, p.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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