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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평의 확대를 기대하며 -- 조성면의 「환멸의 시학, 환상의 정치학」에 부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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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평의 확대를 기대하며 -- 조성면의 「환멸의 시학, 환상의 정치학」에 부쳐

비평쟁이 괴리 2024. 8. 23. 17:58

▶ 아래 글은 '작가' 지의 평론 등단작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성면씨는 등단 이후, 한국의 장르 문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진 전문가가 되었다. 그가 여전히 무명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조성면의 「환멸의 시학, 환상의 정치학」은 판타지 소설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글이다. 판타지 소설은 90년대 이후 통신망의 자유 기고가들에 의해 급성장하여 10-20대 독서층의 지지를 업고 재래의 독서 공간까지도 광범위하게 잠식해 들어왔다. 그 질적 수준이 어떠하든 이 압도적 현상 자체가 비평가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것은 문학이 살아내야 할 환경 중의 하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판타지 소설인가? 왜 한국에서는 하필이면 판타지인가? S/F나 추리소설은 왜 안되고 그것만 되는가? 그것은 한국문학의 어떤 결핍을 채워주고 어떤 부분을 과잉시키고 있는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한국문화의 새로운 저층을 이루게 될 것인가? 이러한 환경의 역학을 정확하게 산술하지 않는다면 문학의 어떤 비장한 모험도 태도의 희극에 빠지고 만다.
조성면의 글은 이러한 문제제기에서 시작한다. 그는 근엄한 한국비평의 목소리를 낮추고 문학의 저변으로 내려가 그 지형을 측지하려고 한다. 물론 판타지 소설 현상에 대한 주석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성면의 글은 저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해석들을 넘어서 근본적인 발생의 자리로 뚫고 들어가려고 한다. 우선, 문화심리학을 넘어서 정치경제학으로 가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한국 문화의 집단 심리를 캐기보다 그것의 추동 요인을, 다시 말해, 자본과 상품의 사회적 구조를 찾으려 한다. 다음, 그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거꾸로 문화심리학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럼으로써 그 현상을 단순히 집단적 욕망의 유출로서가 아니라 자본과 소비 두 욕망의 충돌로서 이해하려고 했다. 그 상호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그는 조심스럽게 판타지 현상 속에 내재된 두 가지 의지, 즉 현실을 방기하려는 의지와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동시에 읽어내려 했다. 어쨌든 그 현상은 한국 문화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고, 그렇다면, 그 내부로부터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의 시도가 만족할만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아직 판타지 현상의 두 가지 의지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 두 의지를 함께 밀고 나가 새로운 문학의 전망을 일구어내는 일은 불투명의 늪 속에 침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한국 비평이 외면하고 있는 길을 가려고 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 비평에 필요한 사람은 상투적인 답들을 되풀이하는 이가 아니라, 새로운 시야와 전망을 개척하기 위해 암중 모색하는 이이다. 조성면은 그 암중모색의 어려움을 지극히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어려움이 그의 실존 자체가 되도록, 그래서 홍성원의 표현을 빌려, 그의 비평이 스스로에게 “즐거운 지옥”이 되도록 모두 격려해 주자. (199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