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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알랭 들롱이 떠났다!

비평쟁이 괴리 2024. 8. 21. 08:41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배설이 될 것 같아 안쓰려 했는데, 입으로 역류하는 바람에 그냥 ‘뱉고 만다.’
알랭 들롱Alain Delon이 떠났다. 2024년 8월 18일. 1935년 11월 9일 생이니까, 서양 나이로 88세 10월. 예상할 것도 없이 한국의 모든 미디어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 소식을 요란하게 타전했다. 긴 기사도 많았는데, 개인적인 소회가 대종을 차지했다. 영화사에서 그가 어떤 위치에 놓이는가, 하는 분석기사가 필요한 것 아닐까? 여하튼 그는 나를 포함하여 한국인 모두의 ‘애모인’이었던 게 분명하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너는 내 거였어!”라고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루이 알튀세르(1990.10.22)가 죽었을 때, 한국의 어떤 미디어도 한 줄 언급이 없었다. 장-뤽 낭시(2021.08.23.)가 타계했을 때는 어땠나? 미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자크 데리다(2004.10.09.)가 돌아갔을 때는 두 어 신문에서 한 줄 ‘해석 기사’가 나갔던 기억은 난다. 대중 스타 중에 장-폴 벨몽도의 하직(2021.09.06.) 때는 「네 멋대로 해라」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소식을 전했지만, 세르쥬 갱스부르(1991.03.02.)에 대해서 한국 언론은 더듬이조차 대지 않았다(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몽파르나스의 그의 묘지에는 누군가 매일 꽃을 갈아 바치고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헌화로 치면 유일한 경쟁자는 ‘도어스’의 짐 모리슨의 무덤. ‘페르 라 셰즈’ 묘원에서 같은 대접을 받았었다.) 갱스부르의 동거녀, 제인 버킨이 작별(2023.07.16.)했을 때는, 뜬금없이 ‘버킨백’을 들고 나와 그의 부음을 전했다. 하긴 한국인 중 누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을까? 장-뤽 고다르(2022.09.13.)가 떠났을 때는 메이저 언론에서는 단 두 군데에서만 기사를 썼는데, 놀랍게도 고다르가 ‘안락사’(이 선택을 요새는 ‘조력자살’이라고 부르나?)를 했다는 얘기만 있었다. 고다르의 영화 및 그가 주도한 ‘누벨 바그’가 세계 영화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다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제인 버킨도 그렇다. 영국인으로서 프랑스에 와서 인기 가수가 되었고,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모친이기도 한 여인에 대해 ‘버킨백’이라니, 조롱하나? 
프랑스 언론도 알랭 들롱에 대해 시끄럽게 반향하는 게 보인다. 『르 몽드』는 구독을 끊어서 모르겠는데(사이트에 들어가면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기에는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이른바 지성지를 대표하는 『누벨 옵세르바퇴르』지도, 8월 22일자 판을 이틀 먼저 내보내면서(하루 먼저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표지에 그의 잘 생긴 얼굴과 함께 부음 소식을 띄우고, 10쪽에서 37쪽까지, 그에 관한 기사를 채우고 있다(전체 92쪽이니, 1/3에 가깝다). 제목은 「알랭 들롱, 1935-2024: 어떤 영화의 생애[혹은 한 영화적 인생?] Une vie de cinéma」.(‘어떤 영화’라는 표현은 그가 한 영화 줄기를 대표한다는 뜻이라고 짐작한다.) 필모그래피를 중심으로 그의 영화사적 의미와 예술적 영향(? 여러 가수들에게 끼친)을 먼저 다루고, 이어서 그의 정치적 성향, 사생활, 자녀들 등등에 대해 자세히도 쓰고 있다. 
철학자이든, 문인이든, 셀럽이든, 중요한 것은 그가 인류사에 어떤 자극을 주었고 무엇을 남겼는가, 이다. 그 점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않고 자극적으로 대상을 다루는 언론을 우리는 ‘황색지’라고 부른다. 한국의 미디어는 ‘황색성’을 얼마나 벗었나?
정현종 선생 시 중에 「얼굴에게」라는 게 있다.

내 얼굴이 억제하고 있는 동안
궁둥이는 모름지기 폭발하고 있다
하하

나는 내 얼굴이 때때로
궁둥이여서
불안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