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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미뉘'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

비평쟁이 괴리 2023. 1. 14. 08:43

『누벨 옵세르바퇴르』 지난주 호(3039호, 2023.01.05)를 뒤적이던 중, ‘미뉘Les Éditions de Minuit’ 출판사가 지난 해(공식일자. 2022.01, 발표는 2021.06) 갈리마르Gallimard사에 흡수 합병되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1941년 설립된 ‘미뉘 출판사’는 배르코르Vercors(본명: Jean Bruller)의 『바다의 침묵Le Silence de la mer』을 독일 점령기(1942)에 출판하여, 프랑스 내부 ‘침묵의 저항’의 상징이 되었던 출판사였다. 1948년부터  제롬 렝동Jérô̂me Lindon이 맡아 운영하다가, 사후(2001) 그의 딸 이렌느 렝동Irène Lindon이 대표직을 이어받았었다. 
미뉘 출판사는 독일 점령기의 정치적 상징성 외에, 우수한 작품들을 산출한 뛰어난 문학 출판사였다. 사뮤엘 베케트의 모든 작품이 그곳에서 나왔고 프랑스 내에서는 다른 곳으로 이월되지 않았었다. 특히 베케트의 소설은 이렌느 렝동이 마지막까지 독점을 고집했었다고 한다(Le Figaro, 2021.06.23.). 그 외 알렝 로브-그리에, 나탈리 사로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클로드 시몽, 장 루오, 장-필리프 투셍, 탕기-비엘, 장 에슈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 작가들이 그 출판사를 통해 배출되었다. 10명도 안 되는 편집부 직원들이 그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었다. 
‘미뉘’를 흡수한 갈리마르도 훌륭한 출판사이다. 그러나 갈리마르는 프랑스의 대 가문에서 운영하는 거대 출판사이다. ‘미뉘’는 아주 작은 출판사였다. 이 사정은 문학과 출판을 하나로 묶어 주면서, ‘소수 정신’들의 대의cause를 곧바로 거친 문명의 바다에 작고 또렷이 빛나는 부표처럼 띄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부표에 마음을 의지하고 ‘문화적 야만’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 이 바다를 헤엄쳐 나아갈 힘을 얻곤 하였다. 특히 조르쥬 바타이유Georges Bataille가 창간(1946.06)한 서평지 『크리티크Critique』는 세계 학술지들에 등급을 매기며 괴상한 세계 권력으로 군림하는 톰슨 사가 인문예술 학술지 최고등급으로 특정한 A&HCI 목록에 자발적으로 등재시킬 정도로 최선의 도서 선별과 최적의 서평으로 구성된 최고 수준의 잡지로서, 나는 상당수의 문학적·학술적 정보를 여기에서 구해 왔다.

Critique지 창간호 표지


미뉘가 사라졌다. 아마 합병한 회사(갈리마르의 자회사인 마드리갈Madrigall에서 관할한다고 한다)미뉘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방안을 찾을지도 모른다. 갈리마르도 좋은 출판사이기 때문에 미뉘의 출판 정신은 상당량 보존될 것이다. 또한 이제 베케트를 비롯 많은 작가들이 갈리마르의 최고 총서 플레이아드Pléiade’에 들어갈 것이고, 이는 문학 애호가들의 소망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소수 정신을 대표한 미뉘의 상징성과 그 특별한 역사(役事)는 이제 거기에서는 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일을 도모할 것이다.

한국에도 그런 출판사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걸 현재형으로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1990년대 상업주의가 한국 출판계와 문학인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 그 강도는 점점 심해졌으며, 이제 특정한 이념을 두고 출판사와 문학인이 결합하는 일은 실질적으로 소멸되었다. 그걸 부활시켜야 할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할 것이다. 이 기이한 한국 문화 세계화의 시대이자 독서 인구 세계 최빈국의 장소인 지금, 이곳에서 그 일은 창자가 다 녹아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여전히 엄숙한 정언명령으로 간직하는 사람들도 남아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미뉘출판사의 종언을 알게된 것은 누벨 옵세르바퇴르지난주호의 서평란에 마티외 렝동Mathieu Lindon의 새 소설, 고문서Une Archive(P.O.L., 2023.01)에 대한 기사가 났기 때문이다. 마티외 렝등은 제롬 렝동의 아들이다. 이 소설은 아버지가 출판사를 운영했을 때의 작가들과의 만남을 자신만의 고문서로 축적해왔던 것을 자료로 씌어졌다고 한다. 이 안에는 작가들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가 등장하는데, 하나를 소개하자면, 뒤라스의 마지막 연인, 얀 안드레아Yann Andréa가 끈덕지게 뒤라스 곁을 떠나질 않는 데 피곤해진 마티외가 얀에게 자살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렇구나. 한국에서도 아주 오래 전에 유별나게 기행을 일삼는 어떤 시인에게 주변의 지인들이, 일본 식자들의 자살 바람을 거론하며, 자살을 충동질했고, 그에 호응하여 그 시인이 자살 소동을 벌인 게 신문에 크게 나기도 했었다. 사실 아주 무관한 두 가지 사건이지만, 공연히 그게 생각이 났고, 생각이 난 김에 곰곰이 생각하니 결과가 같다는 점에서 조금은 유관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