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문신공방 하나」 서문 본문

문신공방/문신공방 하나

「문신공방 하나」 서문

비평쟁이 괴리 2022. 4. 22. 06:33

「문신공방 하나」는 문신공방(文身孔方) 하나』라는 제목에 '현대 한국 소설과 비평 그리고 문학판 읽기 1988~2005'라는 부제를 달고 역락출판사에서 2006년 출판되었다. 그 서문이다.

책을 내면서

이 책은 1988년 이후에 씌어진 글들 중 소설과 비평, 문학적 환경, 철학서 등에 관한 단평들을 모은 것이다. 대상이 된 텍스트들은 1960년대 419세대의 작품들부터지만 대부분은 80년대 이후의 텍스트들이다. 또한 단평 모음이라고 했는데 짧게는 6매에서 길게는 50매까지 다양한 길이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 책에서 그것은 형태상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 특성이다.

단평은 두 가지 특징에 의해서 다른 글들과 구별될 것이다. 하나는 씌어질 당시의 정황이 촉발하는 직관적 파악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시일이 지나면 유효성을 상실할 진술들이 증가한다는 약점이 있다. 이 책의 글들도 그 올무에 걸려 있다. 감히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려 하면 몸통이 잘려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들에 기록의 의미를 주고자 하였다. 이 사람들이 이때 여기에서 살았음을, 이때 여기에서 이 작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자리로 이 책을 삼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이 글들을, 1988년 이후 오늘까지 진행되어 온 역사의 궤주라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반박의 자료로 남기고자 한다. 단평의 또 다른 특성은 직관적 파악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얄팍한 인상화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록 단평이지만 긴 글만치 품을 들여, 이 글들이, 황동규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졸아든생각이 되기를 바랐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

1부에서는 소설들을, 2부에서는 비평서들을 대상으로 한 글들을 모았다. 3부는 한국문학의 상황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다. 4부는 번역서에 대한 서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글 말미에는 본래 발표된 때와 장소, 그리고 필요한 경우, 발표 당시의 제목을 붙였다.

책 제목의 첫 두 글자는 떼어서 축자적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떼어놓고 조몰락대다가 어느 순간 찰기가 생겨 달라붙는 걸 느끼고 급기야는 살에 깊이 박히는 체험을 하고 싶다는 건 글 쓸 때의 희망사항이고 그 다음에는 독자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반면 마지막 두 글자는 덩어리째로 발음해 주었으면 싶다. 순차적으로 읽으면 엽전이 된다. 이 단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인데, 나는 늘 孔方工房이기를 꿈꾸었다. 역시 희망사항이다. 그 가운데 空房이 놓여 있고 그 안에서 혼자 취해 攻防한 지 참 오래되었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제목 다음에 붙은 하나는 이 책이 이어질 것을 가리킨다.

[하략]

200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