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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게 한국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한국인들 -서수진의 『골드러시』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서양에게 한국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한국인들 -서수진의 『골드러시』

비평쟁이 괴리 2024. 5. 29. 21:35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다섯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지난 독회에서 문지혁의 『고잉 홈』을 후보작으로 올리면서, 그 소설의 주제를 “한국인에게 미국이란 무엇인가”라고 적었다. 서수진의 『골드러시』(한겨레출판, 2024.03)는 그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책이다. 즉 서수진 소설집의 주제를 “서양에게 한국인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서양인들의 시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작품들의 대체적인 내용은 미국 및 호주에 입국해 정착하는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각 안에 포집된 한국인들 자신의 행태이다. 문장이 복잡한 것은 이중의 시각이 개재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시아인을 비롯해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 즉 에일리언에 대한 서양인의 시각이 바탕을 형성한다. 그 시각은 대체로 실용적인 것이지만, 그에 대한 한국인의 짐작은 인종적 고정관념에서부터 교양적 수준에까지 이르는 인식적‧정서적 판단들로 변주된다. 요컨대 이 소설들은 아시아인에 대한 서양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한국인의 욕망 조성 작업을 조명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적 차원에서 두 가지 특성이 눈에 띤다.
우선 작가의 시각이 매우 폭이 넓으면서도 디테일이 정확하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존재를 버리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서양인의 눈길에 온건한 시민임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의 복합적 욕망의 세목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하여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 모습은 대체로 세 방향으로 나뉘는데, 우선, 교양인의 용모를 갖추고자 노력하는 모습, 가령 우아한 의상을 고르고 집을 꾸미고 골프를 배우며, 지도층의 의견에 기꺼이 동의하면서 마을 공동체 안에 적극 합류하고자 한다.  다음, 이주민으로서의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난민과 이주자를 구별할 뿐 아니라, 이주자들 중에서도 자신들을 끊임없이 차별화하려고 애쓰는 데에 골몰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거의 본능적인 표출들이 있다. 이런 복합적인 이주자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소설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건이 거의 정태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들에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노정된 이동이지, 예기치 않은 변화가 아니다. 이는 작가의 정직한 인식 혹은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소설의 후반부가 공허하다는 느낌 속에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