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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황인숙의 시들(『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문학과지성사, 1988)은 탄성의 바닥을 싱싱하게 튀어오른다. “얏호, 함성을 지르며 / 자유의 섬뜩한 덫을 끌며 / 팅!팅!팅! 시퍼런 용수철을 튕긴다.” 그는 세상의 깊이를 무시한다. 세상을 그는 미끄럼 지치거나, 고양이의 발을 가지고 사뿐사뿐 뛰고 쏘다니고 내닫는다. 말을 바꾸면 세상은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진 해독(解讀)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분홍새’를 보았다해서 “무슨 은유인지, 상징인지” “갸우뚱 거릴” 필요는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그는 장난하듯 세상을 놀고 세상을 어린이의 상상 속에서처럼 자유롭게 변용한다. 그 장난이 얼마나 혈기방장한가 하면, “지구를 팽이처럼 / 돌리기. / 쉬운 일이다. / 사시나무 등어리건 초등학교의 ..
선진조국의 시대에도 시인들은 끊임없이 절망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시란 본래 천상의 노래라서 이 아랫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른바 ‘시적인 것’이 카피와 개그와 대본에게 광범위하게 잠식당하고 있는 반면, 정작 시는 독자를 잃어가고 있는 이 문화산업의 시대에 시인들은 시의 위기를 세상의 위기로 치환시켜 표현하는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시는 시방 죽음 속을 기어가고 있다. 타락이 만연한 세상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죽음으로써 항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절망의 노래는 세상에 대한 시의 가장 절박한 응전인 것이다. 서원동의 『꿈 속에서 꾸는 꿈』(시와 시학사, 1995)도 절망의 노래를 부른다. 시인은 “우리들이 꿈꾸고 아파해 온 희망”이 “구겨지고 짓밟”혔음을 말한다. 그는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