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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이성복의 새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를 읽으니, 그의 시는 아주 깊은 우물을 파서 지구의 내핵에 이른 후 더 이상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할 여지가 소멸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자벌레가 파먹은 어떤 눈은 옹이같다 눈물은 빗물처럼 밖에서 흘러든다 기어코 울려면 못 울 것도 없지만 고성능 양수기가 필요하리라(「눈에 대한 각서」, 부분) 그의 눈이 ‘옹이’이고, 아예 그의 육체가 옹이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2008)에서 그는 ‘말’을 건너 ‘침묵’의 세계로 건너갔고 거기에서 “육체가 진저리치는 광경”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이제 그는 저 육체의 버둥거림이 남긴 적막 속에 스스로 유폐된 듯하다. “흐릿한 눈”을 뜨고. 내가 밥 먹으로 다니는 강가 부산집 뒤안에 한참을 ..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문학과지성사, 2011)는 무기력한 인간의 지극히 하찮은 생각들의 흐름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에 그가 줄곧 그려 온 최저 인간의 정황을 다시 되풀이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 최저 인간의 의식은, 감정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 뒷받침되어서 아주 다양한 생각들을 발생시키고 있고, 이 생각들은 화자의 의식에 꽤 핍진한 긴장을 계속 유지시켜 주고 있다. 그 긴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시시각각의 주체의 인지와 판단과 결단이다. 이 무기력한 인간의 내면 속에는 그의 무기력을 운용하는 에너지의 움직임이 심해의 열수분출공에서 솟아나는 열수처럼 보글거리고 있고, 그것은 언뜻 보아서는 무기력한 삶의 한없는 되풀이로 보이는 그의 삶을 아주 천천히 변화시킨다. ..
구효서의 『동주』(자음과 모음, 2011)는 오랫동안 윤동주에게 씌어졌던 상투적인 이미지를 벗겨버리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요컨대 작가에 의하면 윤동주는 ‘민족시인’이라기보다, ‘세계시민’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조선인이 됨으로써 세계인이 되기 위해 깊이 고뇌한 사람이다. 그런 윤동주를 작가는 ‘언어’에 근거해서 상정할 수 있었는데, 즉, 그의 모어는 조선어이지만, 그가 익힌 언어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라는 것이다. 언어가 정신의 거처라는 생각은 꽤 설득력 있는 생각이며, 이에 근거해서, 작가는 아이누 여자의 야성성-각 인물들의 민족성-윤동주의 세계성이라는 구도를 잡고, 새로운 윤동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구도의 각 항목들은 적당했으나, 그 구도의 각 항목들을 잇는 연결선은..
나는 2006년 9월 1일부터 2007년 8월 31일까지 프랑스에 체류하였다. 7년마다 돌아오게끔 되어 있는 ‘연구년’ 명목이었다. 1984년 12월부터 2000년 여름까지 근무했던 충남대학교에서는 그런 제도가 뒤늦게 생겼기 때문에 그 혜택을 누릴 기회가 없었는데, 그제서야 그 과실을 맛 볼 기회를 만난 참이었다. 프랑스에 가기 직전 나는 한국문학과 매우 소원한 상태였다. 2000년경부터 80년대부터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 『문학과사회』 편집에서 물러나고 나만 외톨이로 남은 이후, 나는 대부분의 실무를 후배들에게 넘기고 해외 이론의 소개와 문학 좌담을 이끄는 것으로 내 역할을 한정하였다. 그리고 2004년 겨울호를 끝으로, 『문학과사회』편집도 그만 두었다. 그때쯤이면 나는 평론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있던 ..
지난 주 2일(수), 산울림 극단의 「고도를 기다리며」 (Samuel Beckett, 1952)를 오래간만에 보았다. 학생 시절에 보고 엄청난 세월을 건너 뛰어 다시 보았다. 광고문을 보니, 산울림 극장 개관이 26년 전이라 하니, 내가 본 것은 극단이 아직 출범하지 않았던 때였을 것이다. 그래도 현 산울림 극단장인 임영웅 선생이 당시 연극을 연출했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이인성 형을 통해 베케트에 입문한 이래, 나는 그의 희곡과 소설을 읽었고, 충남대학교 불문과 선생으로 있을 때는, ‘현대 불희곡’ 수업에서 여러 번 「고도를 기다리며」를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 연극을 관람하기는 딱 한 번 뿐이었다. 그리고 수십 년만에 다시 보게 된 것이다.보았더니, 저 옛날의 감동이 다시 되살아난다는 느낌에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