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홍성원 (2)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남도 기행」은 서울 낚시꾼의 “행복한 방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방면’은 물론 석방의 다른 말이다. 그는 Y시의 남녘 바다에 바다낚시를 감으로써, “대도시의 진구렁”에서 방면되곤 한다. 그러나 방면은 탈출과 다른 말이다. 탈출과 달리 방면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이다. 작가가 굳이 이 생경한 한자어를 쓴 까닭은, 서울 낚시꾼이 여전히 서울의 감시 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일까? 과연 그는 바다에 와서도 ‘서울’의 표지를 떼어낼 수 없으며, 때가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풀려남은 한시적이고 속박적인 것이다. 방면은, 따라서 해방이 아니라 해방에 대한 강박관념, 해방에 대한 열망과 절망이 뒤엉킨 감정의 덩어리를 지시한다. 그러나 서울 낚시꾼의 방면은 그가 준비하고 실행한 방..

『달과 칼』(한양출판, 1993)의 작가는 몸 전체로 말한다. 이 말은 한갓 수사가 아니다. 몸으로 말한다 함은 삶의 구체성 속에서 언어가 솟아나온다는 것을 뜻한다. 작품의 시간적 무대는 ‘임진왜란’이다. 작가가 그리는 것은, 그러나, 장군들의 활약도, 외적을 물리친 조선 백성의 기개도 아니다. 모든 수난과 싸움과 승리가 어떠한 이념으로부터도 주조되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생활사를 재구성한다. 그는 수난을 말하되 나라의 수난이 아닌 제 각각의 수난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싸움을 그리되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치러내는 고통 속으로 진입하며, 승리를 말하되 군사력의 승리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익힌 지식과 지혜가 어우러져 일구어낸 삶의 승리를 보여준다. 임진왜란이 민족의 수난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