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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정지용의 「바다 21)」는 서정시에 있어서의 자아의 존재태를 이해하기 위한 범례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읽어 보자. 바다는 뿔뿔이 달어 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었다. 힌 발톱에 찢긴 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루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시쳤다. 이 앨쓴 海圖에 손을 싯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회동그란히 바쳐 들었다! 地球는 蓮닢인양 옴으라들고……펴고…… (1935) 이 시의 일차적인 매력은 대상의 생동성에 있다. “바다가 뿔뿔이 달아난다”는 표현이 신선하다. 그리고 이어서 이 표현을 실감시키기 위해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고 비유한 게 적의하였다. 그런데 최초의 ..
한국의 시에서 ‘나’가 언제 등장할까를 물으려면 ‘타자’의 등장을 함께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와 다른 자’에 대한 발견만이 ‘나’를 ‘나’로서 자각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에는 좀 더 섬세한 분별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뜻 보기에 사람이 타자에 둘러싸여 살아온 건 인류가 태어날 때부터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에 몇 개의 조건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나’는 근대 이후 인류의 일반적 존재형이 된 개인 주체로서의 ‘나’를 가리킨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고, ‘타자’는 존재론적으로 나와 동등한 차원에 속하지만 본질적으로 ‘나에게 낯선 존재’라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다. 동등한 차원에 속한다는 것은 ‘타자’ 역시 근대적 개인 주체라는 것이고 ‘낯선 타자’라는 것은 원리적으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