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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이만형과 함께 번역한 장-뤽 낭시의 『나를 만지지 마라 -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Jean-Luc Nancy, Noli me tangere - Essai sur la levée du corps, Paris: Bayard, 2003)에서 역자 해설로 씌어진 것이다. 최근 이 해설에서 약간의 오류를 수정해서 재작성하였고, 또한 이 글이 오늘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유익한 조언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블로그에 올린다. 이 책은 예수의 부활의 장면에 관한 성찰의 글이다. 『요한복음』을 예로 간단히 정리하면 부활의 첫 장면(제20장 1~18절)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나서 안식 후 첫날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알..

“그들에게서 눈을 앗아간 바로 그 사람들이 인민이 눈이 멀었다고 비난하는구려.” - 존 밀턴(John Milton) [1] 촘스키 – 허만(Chomsky & Herman)의 인용[2]으로 내가 읽었던 이 문장은 미디어를 겨냥하는 글이지만, 그러나 지금 주의해야 할 것은, 세계 전체가 미디어라는 사실이다. 모두가 미디어라는 것은, 언로가 활짝 열려 있다는 뜻인데, 그 안에 지배/예속의 역장이, 권세와 추종, 매혹과 피학 쾌감, 대표와 여론들의 기묘한 말림이, 아! 김밥 천국이여, 사방에서 일렁, 쩔렁, 울렁, 껄렁거린다. 이 닫힌 계 안의 열린 입구멍들, 안에 새끼 블랙홀들이 무수히 바글거리는 세계라는 이름의 항아리. 밀턴의 저 말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할 듯. “대중의 입바른 소리를 들으라고 호통치던 ..
얼마 전 국가의 입장을 결정하는 몇몇 자리에서 한국의 지식층 및 지도층들 사이에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는 게 미디어를 통해서 알려졌었다. 그런 논쟁은 당황스러운 데가 있다. 민주주의에는 당연히 ‘자유’가 핵심 의미소로 자리 잡고 있는 터에 어떻게 쓰든 무슨 상관인가, 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서, ‘자유’를 빼자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굳이 거기에 그걸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또 그들대로, 다른 생각이 있는 게 분명하고, 그 다른 생각들이 야기한 갈등은 한국사회의 미묘한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마침 송호근씨가 「‘시세’와 ‘처지’가 중요하다」(『세계의 문학』, 2011년 겨울)라는 글에서 이 문제를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