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01년 '현대시 신인상' 심사평 본문
임현정 씨를 추천한다. 본심에 오른 분들의 작품 중에 임현정 씨의 시가 특별히 눈에 띠었다. 임현정 씨는 일상의 경험들을 독특한 이미지로 치환하는 데 능숙한 솜씨를 가졌다. 치환은 물론 단순한 번역이 아니다. 그것은 변신의 체험이며, 그 ‘변신’으로서의 활동으로 일상의 경험과 날렵히 대결한다. 씨의 시에서는 일상의 경험이 날 것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은 이미지들로 빛난다. 가령, “벽화를 보았나요. 소의 뿔이 인상적이었죠. / 그녀의 바지가랑이가 펑 젖어 있다”는 동굴 견학을 한 사람들의 대화와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구절은 사회심리학적 차원에서의 음험하고도 예리한 관찰 혹은 비판을 담고 있다. 또한 “승용차 지나간다. / 고양이, 도로 위에 프린팅되다” 같은 구절에서 우리는 실제로 승용차에 깔려 짓이겨지는 고양이의 시체(의 운명)를 선연히 떠올리는 가운데, 삶의 무게에 납작하게 짓눌리면서 온갖 희노애락을 연출하는 우리 자신의 희비극적 생애를 문득 감지케 된다. 그 점에서 그의 시는 인생에 대한 관찰이며 동시에 검은 우의의 세계라는 두 겹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두 겹의 차원은 덧댄 흔적이 보이지 않게 말끔하게 포개져 있다. 그것은, 시의 꽃이 삶이라는 단단한 바위 위에 뿌리내리는 데서 피어난다는, 진술로서는 상투적이지만 실천으로서는 희귀한 명제를 그가 말 그대로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시선은 먼 데로 뻗은 / 붉은 길 위에 있지만/ 나는 황금색 밀밭을 걸어갈 것이다./악성빈혈 같은 나의 허기는 노란 그림 몇 점을 /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 다시 물감 묻은 붓을 들 것이다.”에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듯이 그의 시는 일상을 먹고 자란다. 그것을 먹되 언어의 치아로 우물거려 완전히 변신한 다른 존재로서의 시를 뱉어낸다. 그것이 그의 시 곧 삶의 연금술이다. 좋은 시인을 만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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