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이시영의 「한 눈빛」 본문

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이시영의 「한 눈빛」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2:56

  한 눈빛

   

어머니 병원 가시고 난 지 일주일

창 밖 후박나무 가지 위에 웬 이름 모를 멧새 하나 찾아와

종일을 앉았다가 날아가곤, 앉았다가 날아가곤 한다

어머니 아예 먼길 뜨시려고 저러는 걸까

새는 날아가고 날아간 새의 초점 없는 희미한 눈빛만이 가지 끝에 앉아

밤새도록 흔들거리며 나를 굽어보고 있다

(이시영 시집, 사이, 창작과비평사, 1996)

 

어머니가 입원하신 것과 창 밖에 새 날아온 것이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인간의 사건과 자연의 광경을 정면으로 맞대놓고 시침 떼는 것은 후반기 이시영 시의 아주 특징적인 면모이다. 그 두 세상 사이의 관계를 눈치 채기 힘들어서 독자는 종종 어리둥절해지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때로 내밀히 조응하는 연결이 숨어 있어서 복잡한 심사를 귀신처럼 드러낸다.

새가 날아 앉은 후박나무에 열쇠가 있다. 후박나무는 굵은 나뭇가지가 넓게 퍼져서 마치 거대한 거북이가 우듬지에 올라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모양을 하고 있는 상록교목이다. 또한 쓰임새가 많은 나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이미지와 엇비슷이 포개진다. 그 후박나무에 앉았다가 날아가곤하는 새는 어머니를 근심하는 나의 모습과 그 역시 엇비슷이 포개진다. 그러나 후박나무는 어머니가 아니고 새는 내가 아니다. 나의 마음은 어떤 자연으로도 번역될 수가 없다. 그러니, 그게 문자 그대로 근심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 생각의 불투명성이 새가 날아간 자리에 새의 초점없는 희미한 눈빛으로 남았다. 자연이 인간의 은유로 작용할 때는 오직 무지혹은 무의미로서만이다. 이시영 시 특유의 메시지이고, 형식이다. (쓴날: 2002.05.16, 발표:주간조선1705, 200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