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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의 「아침 출근」 본문

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마종기의 「아침 출근」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2:58

아침 출근

 

이를 닦는다

지난밤을 닦아낸다.

경황 없이 경험한 꿈들을

하얗게 씻어낸다.

모든 밤의 장식을 씻어낸다.

 

밥상 앞에서도

허황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동작으로

숟가락에 담는 현실.

 

출근, 출동 혹은 충돌!

하루의 모든 충돌이

빛이 되기를 기대한다.

상처가 만져지기 시작하는

우리들 나이의 이마.

피 흘리지 않고 모든 충돌이

불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최근에 읽은 마종기 시인의 몇몇 시편들이 내 마음 속에 남긴 감동의 여운이 자못 깊어서 그의 옛 시집들을 다시 들추어보게 되었다. 아침 출근수필적 서정성라고 불리는 마종기 시의 특징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 시이다. ‘수필적이라는 말은 생활의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솔직담백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서정성이라는 것은, 그에 대한 흔한 정의와 부합하게, 그러한 생활사를 마음의 용기에 담아 새로운 삶에 대한 깨달음, 소망, 의지로 변용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첫 두 행, “이를 닦는다/지난 밤을 닦아낸다는 그러한 수필적 서정이 말끔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이를 닦는 행위는 지난밤까지 입 안에 끼인 찌꺼기를 세척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새 아침을 시작하는 마음의 의례이다. 물리적 사건과 심리적 사태가 재치있게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심상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시인의 소망 혹은 의지가 깃들어 있다. “상처가 만져지기 시작하는/우리들 나이에서 그가 소망하는 것, “하루의 모든 충돌이/빛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이 닦는 행위의 묘사를 가능케 한 것이다. 이를 닦듯이 마음을 정갈케 해야, 대낮에 벌어질 모든 충돌에서 사심의 찌꺼기들을 걸러내고 진심의 알맹이들을 정련해,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상생의 불을 지필 수가 있는 것이다.(쓴날: 2002.05.30, 발표: 주간조선1707, 2002.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