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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의 「나의 연못, 나의 요양원」 본문

울림의 글/시 한 편 읽기

황지우의 「나의 연못, 나의 요양원」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3:01

나의 연못, 나의 요양원

 

목욕탕에서 옷 벗을 때

더 벗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다

나는 나에게서 느낀다

이것 아닌 다른 생으로 몸 바꾸는

환생을 꿈꾸는 오래된 배룡나무

 

탕으로 들어가는 굽은 몸들처럼

연못 둘레에

樹齡 三百年 百日紅 나무들

구부정하게 서 있다

 

만개한 8紫薇,

부채 바람 받는 쪽의 숯불처럼

나를 향해 점점 밝아지는데

저 화엄탕에 발가벗고 들어가

생을 바꿔가지고 나오고 싶다

불티 같은 꽃잎들 머리에 흠뻑 쓰고

 

나는 웃으리라, 서울서 벗들 오면

상처받은 사람이 세상을 단장한다

말하고, 그들이 돌아갈 땐

한번 더 뒤돌아보게 하여

저 바짝 오른 꽃들,

눈에 넣어주리라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수년 전, 시집으로서는 예외적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40대 후반에 들어 잘못 살았다는 우울한 각성에 사로잡힌 중년의 울적한 심사로 근근한 시집이다. 시인의 몰골은 시종, 다른 생으로 탈출하고 싶은 낭만적 충동이 세상의 녹진녹진한 막에 농락당하다가 생기와 물기가 다 빠져나가버려 무두질당한 가죽부대의 모양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러나 이 맥 빠진 시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닳아빠진 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의 비애가 가슴 밑바닥에 자우룩하게 깔리는 만큼 똑같은 정도로 지친 생을 기어이 끌고 가 활활 태우고 싶어하는 열망이 부채 바람 받는 쪽의 숯불처럼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숯불은 물론 생 한복판으로 통하는 아궁이에서 일어난다. 생을 바뀌치려면 생 한 복판으로 발가벗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밖으로 탈출하는 데에 지쳐버린 인생이 실은 생의 한 가운데를 꿰뚫기 위해 열심히 골몰한 생이기도 할 것이다. 배롱나무가 구부정하게 선 포즈로 백일의 꽃을 피우고 있듯이.

* 첨언: ‘배룡나무의 표준말은 배롱나무다. 그런데 남쪽에서는 으로 발음하는가보다. 황지우의 시에는 이렇게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대에서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어휘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살아 있는 언어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시의 본령이라면 황지우의 이런 습관은 존중되어야 한다. (쓴날:2002.07.12, 발표:주간조선1713, 200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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