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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집으로 오세요 - 신종원의 『습지장례법』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유령의 집으로 오세요 - 신종원의 『습지장례법』

비평쟁이 괴리 2023. 1. 18. 14:51

※ 아래 글은 제54회 (2023년) 동인문학상 첫 번째 독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된 글에 대한 지면용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신종원의 습지장례법(문학과지성사, 2022.08)은 유령의 집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책을 펼치면 엽기 장례를 치르는 광경이 격하게 묘사된다. 뭐가 엽기란 말인가? 잘 알다시피 문학에 비유법이란 게 있다. 장미로 미인을 비유하고, 주가 급등을 쇠뿔로 비유한다. 여기에서는 분묘를 늪지에 비유했다.

비유는 장식이 아니다. 원본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늪지에 비유했더니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 가문의 모든 조상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늪에 빠져 죽은 시체로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다. 온전히 삭지 못한 채로 너덜너덜한 수의들과 썩어가는 살점들이 질척한 흙탕물을 뚝뚝 흘리며 역한 냄새를 풍긴다.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반면 이 늪지대는 구토를 유발하기만 한다. 뜬금없이 왜 이러나? 조상들이 도솔천을 건너지 못하고 거기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가문을 못 잊어서, 자손들을 가문의 영광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국인의 이름은 대개 석 자이다. 그런데 그중 두 자는 가문과 그 안의 위계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한 자만 오로지 자기 것이다. 이렇게 한국인은 문벌에 매여있다. 유독 족보를 따지는 게 한국인이다. 그래서 작가는 가리킨다. 한국인들은 구천에서 우글거리는 유령들에 꼼짝없이 포박되어 있다.

저 옛날 이상(李箱)은 자신의 천재가 개화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로 혈청의 원가상환을 요구하는 가문의 기대를 지목한 적이 있다. 실로 식민지 현실은 조선인들을 일본의 노예로 만든 것만이 아니다. 쇄망한 왕조에 대한 미련을 습성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정말로 해야 할 것은 개명된 자주 독립 국가였는데 말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퇴락한 유습들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한다. 사색당쟁의 그 더러운 싸움질까지도.

그러나 작가는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보살폈던 일들을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 처참한 모습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를 사랑한다면, 고이 보내드려야 한다. 저렇게 구천에서 망령춤을 추시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이건 한갓 유령의 집일 뿐이야. 놀이공원에 있는 그 가건물이야. 어서 이걸 깨부숴버리자. 독자여, 망치를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