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리얼리즘의 본 뜻: 사물에 대한 정직성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은』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리얼리즘의 본 뜻: 사물에 대한 정직성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은』

비평쟁이 괴리 2023. 1. 12. 01:50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첫 번째 독회의 결과에 대한 독후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에 양해를 구해, 블로그에도 싣는다.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은(민음사, 2022.09)은 이제 소수자의 삶을 공정하게 대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1980년대 후반부터 큰 의제의 성격을 가지고 폭발한 성평등에 대한 의론들은 요 근래 몇 년 사이에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으로 급격히 발전하였다. 짐작컨대 성소수자로서의 자각과 자인의 수보다도 그 수량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는 것은 성소수자 쟁론에 상당히 많은 외부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있었다.

긍정적인 면은, 성소수자 문제가 궁극적으로 성평등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면, 이는 성소수자의 인권이 인류 전체의 공통의 과제라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그 논의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즉 성평등은 저 옛날 생명들이 성선택을 한 순간에 작동한 원리, 즉 생명 다양성이 진화적으로 적합하다는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니, 이를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이로써 우연적인 것 혹은 비규범적인 것의 발생에 대한 적극적인 인정과 그 효과에 대한 유의가 적절한 과학적 관점이라는 새로운 이론 패러다임이 담론적 우위성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고착된 원칙주의가 사회를 압박하는 정도가 유달리 심한 한국 사회에서는 진지하게 계몽되어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도 만만치 않게 증식하였다. 무엇보다도 이를 말초적 호기심의 사안으로 접근한 시각들이 유무형의 상업적 활용으로까지 발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사건들이 활개치는 걸 보고 있으면, 차는 혀가 소태 씹는 상태로까지 이르게 되는데, 필자의 감정은 뒤에 둔다 치고, 소수자의 문제는 그 무엇이든 디테일의 개별성과 정확성이라는 기준을 통해서 다양성과 평등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 각별한 중요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은의 주 인물들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폭넓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거기에는 성소수자 의제를 활발하게 생산해내는 스트레이트에게 어째서 당신이 우리의 스피커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있고, 그 물음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기만 하면, 선의와 정치적 신념을 담보하기만 하면 당신의 발언은 정당해지는가. 당신이 성소수자를 도구화해서 재생산한 편견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의혹으로 발전한다. 다른 한편, “당사자성이 결코 발언의 자격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p.20)는 태도를 함께 갖춤으로써, 성소수자 자신의 내부에 도사린 욕망의 내용과 결과 수량을 꼼꼼히 헤아리는 태도를 진지하게 수락한다. 그럼으로써 이 두 가지 양극의 푯대를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분기와 얽힘이 발생하는지를 넓게 아우르면서, 때마다 다른 의미와 질감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면밀히 주목하면서, 그것들을 종합할 수 있는 덩굴을 찾아간다.

이러한 시각의 폭, 즉 열린 정도와 개별 사안들에 대한 촘촘한 눈길을 통해서 성소수자 문제가 아주 주밀하게 점검되고 있다. 이 사실성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은 사물에 대한 정직성에 다름 아니라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집의 최고의 성취라고 할 만하다. 이것은 흔히 리얼리즘에 따라 붙는 췌사, ‘사회적 전형의 창출이라든지, ‘진보하는 세계의 충실한 반영등등의 헛껍데기 같은 명령어들을 단박에 의심하고 걷어차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이른바 팩트에 접근하는 일의 자세를 독자에게 일깨워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