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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글

시정신의 현장들에 시정신은 있는가?

비평쟁이 괴리 2022. 11. 12. 15:46

※ 아래 글은 한국시인협회에서 발간하는 『한국시인』 2022년 가을, 겨울호에 발표한 것이다. 잡지가 발간된지 시간이 꽤 경과했다고 판단하여, 블로그에 싣는다.

 

1. 시정신을 이용하는 정치공학

 

시정신(詩精神)’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아마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샤를르 보들레르가 185619일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정신과 기사도적 정념보다 세상에서 더 소중한 건 없습니다”[1]라고 썼던 일이리라.

이 널리 회자된 구절에서 시정신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문구 안에는 별도의 정의가 없기 때문에 이 인용문만 접한 사람은 기사도적 정념과 유사한 어떤 정신을 가리킨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기사도적 정념역시 모호한 용어이긴 마찬가지다. 10세기경에 기사chevalier’라는 용어가 개발되고 곧 이어서 기사도라는 용어가 생겨났는데, 그 이후 시대의 변동과 더불어 이 용어에 투여된 의미들과 이 용어를 둘러싼 감성은 엄청난 편차를 보이며 변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가? ‘시정신이라는 이 모호한 용어를 남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듯하다. 특히 항간에서는 시적인 태도에 빗대어, 용맹하다고 간주된 정치적 신념과 행동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하는 욕망들이 처처에서 불끈거리고 있는 꼴이 뚜렷하다.

언제부턴가 시를 그 자체로서 음미하지 않고, 정치를 비유하는 부속으로 활용하는 예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의 질을 직접 점검하는 월평은 사라진 대신, ‘오늘 아침 시류의 아슴한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고정난을 일간지가 만들고, 지도층에 속하는 인사들이 그 시를 오려 앞 포켓에 넣어 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꺼내서 읽는 풍토가 한동안 일더니, 이제는 각종 언론에서 사회정치적 사건들을 상징하는 도구로 시를 동원하는 일이 일상적인 관행이 되었다. 이른바 SNS의 공간에서 활약하는 정치 활동가, 정치 평론가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시로 은유하는 것도 풍토병이 된 지 오래다. 또한 정치 집단들에서도 자신들의 이념을 상징하는 문화물로 대중가요를 내세우기 시작한 게 1987년의 늙은 군인의 노래부터였는데, 이제는 유명한 대중시가 바로 정당의 당가로 쓰인다.

그리고 시정신을 표방하는 문인들이 정치 마당 안으로 직접 뛰어들어 상모를 흔들어대는 일도 흔하디 흔해져서, 이젠 감동도 느낌도 없는 사건들이 되어 가고 있다. 1980년대 초엽에 김춘수 선생이 유정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실감케 한다.

2. 대결의 정신 속에만 만남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시와 정치, 시와 사회의 접촉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학과 정치의 상호순환성은 삶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학과 정치는 각각 상대방에 대해, 서로 긴장하면서 상대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자신을 갱신하는 참조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율적이고 대립적이며 상관적인 영역들의 길항작용을 통한 인간 정신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와는 거꾸로 정치가 시를 포장지로 사용하고 시가 정치를 발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와 정치를 아예 무관한 것으로 여기려고 했던 소위 순수문학의 태도보다도 더 험악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들레르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정신을 직접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뜻을 짐작케 하는 단서를 남겨 놓았다. 그 구절을 김붕구 선생님의 아주 멋진 번역으로 인용해 보자.

 

“진정한 시인들의 특질은 […] 저 자신에게서 벗어나서 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2]

 

이 구절은 일단 시와 생활 사이의 관계를 이질적인 것들의 마주침과 상호 이해로 규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편지의 맥락을 반추하면, 그 이상의 다른 의미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편지의 주된 내용은 시에 대한 신념을 표명하는 부분과 자신의 이복형제인 앙셀Ancelle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가감없이 노출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용된 구절에서의 전혀 다른 성격[] 이해는 그를 용인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자신에 대해 갖는 두려움, 바보스러움, 거칠음, 그의 사악한 성격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시인은 형제를 용맹한 짐승 자식braves gens bê̂tes”의 부류에 넣고, 누가 자신에게 형제가 있느냐고 묻는 걸 듣고 싶지 않다고까지 적는다. 그리곤 이어서 저 문제의 시정신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정신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성격과 특질을 냉정히 파악하고 그와 맞서 싸울 임전의 태세를 의연히 갖추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이어서 기사도적 정념을 거론한 것은 바로 이 대결의 의지를 두고 한 말임을 우리는 이제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시와 정치의 만남은 싸움의 형식으로, 즉 비판과 쟁론의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들레르는 시정신의 이름으로 적확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싸울 수 있을 때에만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껍질을 깨고 타자들과 살을 뒤섞으며, 공진화할 통로를 열 수가 있는 것이다.

시와 정치가 싸우지 않으니, 정치는 정치 안에서 정치가들끼리 전혀 소통의 가능성이 없이 너죽고 나살자고 치고 받는 것이며, 시인들은 시 안에서 그저 자기만의 외로된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각성의 촉매로 삼지 않는 한, 모든 존재들은 저마다의 참호에 갇힌 채로 바깥을 향해 그저 수류탄만을 던지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적의 공격이 피해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시를 부적처럼 걸어 놓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다른 시구를 빌리자면, 이는 시정신이라는 정숙한 단어를 우리 모두 합심해서 싸구려로 변질”[3]시키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대결의 정신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정신

물론 대결의 정신 자체가 다른 정신의 밑받침을 필요로 한다. 참된 대의가 싸움의 근거로 작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들로 미루어, 보들레르의 시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이는, 초현실주의자로 흔히 알려져 있는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이다. 그는 파리의 농부라는 작품에서 어떤 유곽의 지하 규방 침대 위에 걸린 두 판화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아주 납작한 화덕이 있고, 그 위를 빌로오드 천으로 덮었다. 창문과 화덕 사이에 놓은 소파 뒤로는 커튼이 늘어져 있다. 창문과 침대 사이에는 억지로 부착한 듯한 문이 있고, 이 문은 경첩이 맞물리질 않는 상태다. 이 문 사이 아래로 빛이 스며든다. 유행이 지난 조그만 모조 입상들이 있고, 몇 점의 그림이 보인다. 특히 두 그림은 방 한 복판의 침대 위로 걸려 있다. 두 개의 판화인데, 아주 오래된 잡지 『주일의 태양』에서 부록으로 제공한 것들로 보인다. 같은 사람이 그린 듯한데, 하나는 들판에서 한 커플이 로미오와 줄리엣 풍의 낭만적인 의상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림이다. 두 인물 모두 어딘가 아주 자연스런 나른한 표정이다. […] 다른 하나의 판화는 규방을 그린 작품인데, 커튼이 조심성없이 벌어져 있고 그 사이로 한 소녀가 무방비한 상태로 잠들어 있다. 날이 더워서 풀린 옷이 흘러내리면서 다소곳한 모습의 유방 한쪽이 드러나기 직전이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다. 늘 똑같은 사랑들이 그녀를 방문하고, 한줌의 꽃가루를 커튼 뒤 방 바닥 위로, 그녀의 헝크러진 머리가 드리운 근사한 그림자에까지, 뿌려대면서 시시덕대고 있다. 이 판화들이 이 장소를 장식하게 된 데에는, 요컨대 높은 담장을 가진 집들의 벽 위에 그려진 외설한 영상들을 제치고 이 작품들을 특별히 걸어놓게끔 한 데에는, 이성이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본능에 근거한 어떤 비밀이 있는 듯하다. 일종의 ‘시정신’이랄까 하는 것이 여기에 있다”.[4]

 

이 모호한 묘사 위에 걸린 시정신이라는 어사가 무엇을 함의하는가? 그것은 낡은 잡지의 부록에서 뜯어낸 이 그림들이, 높은 담장 집 벽 그림들의 천박함에 맞서서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품위를 자아내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한다고밖에는 달리 풀이할 길이 없다. 이 품위를 명징하게 분석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다만 우리는 그것들이 낡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낡았기 때문에, 저 장소의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비천하기 때문에, 저 요란하기만 한 높은 담장의 허세에 맞서고 있다는 것이 이해의 출발점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그림이 규방 속의 규방 그림, 즉 규방의 내면상징도mise en abyme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때에, 이 그림이 규방의 심연을 응시토록 비추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데서부터 분석의 알고리즘이 작성되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시 지형 분석의 청사진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규방의 내면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첩경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규방의 내면이 곧 그것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아라공은 이어서, 이러한 시정신의 가장 훌륭한 구현자로서 당대(19세기)에 최고의 상징파로 받아들여졌던 테오도르 드 방빌Théodore de Banville을 거명한다. 그는 파리의 유곽을 섭렵하면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적, 일상의 표정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그 재현 속에는, 경건한 작가나 시인들이 무심결에 외치지만, 결코 스스로 실행하지는 않기 일쑤인, “낮은 곳에 임하는 자의 성실함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아라공은 유곽을 드나든 자를 찬양한 자신에게 쏟아질 수도 있는 비난을 미리 띄우고 이렇게 반박한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내가 가장 밑바닥 수준의 연애 행각을 벌인다는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감정을 좋은 취향으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가장 낮은 곳에서 내가 나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장 비천하고 가장 점잖지 못한 공물대로부터 어떤 혐오로든 나를 결코 떼어놓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감정이 이런 비천함과 양립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자연에 거스르는 것이 아닐까? 그건 바로 모든 가장무도회를 포기하는 대가로 스스로 물에 뛰어드는 나 자신의 모험인 이 모험에 대한 맹목적인 부정이 아닌가? […] 나는 여기에서 일종의 허위, 일종의 위선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5]

 

그렇다. 그것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든 낮게 위치한 자리에 침을 뱉는 이들은, 여전히 고귀함만을 독식하고자 하는 지배자의 욕망으로 불탄다. 진정한 시정신은 그런 지배의 욕망과 정면에서 맞서 싸워야 한다. 오늘날 그 지배자의 욕망은 요란한 현시(顯示)의 위선 쇼를 벌이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자동적으로 증강되고 있다. 거기에 시방 가 무차별적으로 동원되고 있는 사정에 대해, 나는 정말 걱정한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첫걸음은 무엇보다도 시와 정치, 시와 사회의 유착관계를 끊는 것임을 되새긴다. 단호히 끊되, 유착을 길항으로, 대립과 성찰과 공진화에 대한 모색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 길은 궁극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의 사랑과 자유로 향하게 될 것이다. 나는 거기에 시정신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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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Charles Baudelaire, Correspondance I. (janvier 1832-février 1860) (coll.: Pléiade), Paris: Gallimard, 1973, p.335.

[2] Ch. Baudelaire, ibid., p.334; 김붕구, 보들레에르 - 평전·미학과 시세계, 서울: 문학과지성사, 1977, 180.

[3] Charles Baudelaire, Œuvres Complètes I - texte établi, présenté et annoté par Claude Pichois (coll.: Pléiade), Paris: Gallimard, 1975, p.202.

[4] Louis Aragon, Le paysan de Paris, in Œuvres Poétiques Complètes - Tome 1. (coll.: Pléiade), Paris: Gallimard, 2007, p.220.

[5] ibid., pp. .2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