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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

비평쟁이 괴리 2011. 8. 31. 19:35

사랑은 미래이고, 미래는 자유


샤리아르 만다니푸르, 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 김이선 옮김, 민음사, 467, 14,000

 

  이 작품은 우선은 희귀성 때문에 선정되었다. 이란의 현대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문학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상징적 지표 중의 하나이다. 이제 우리는 영···서의 문학만을 세계문학이라 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생산된 문학이 세계문학이다. 지구상의 모든 곳에 독특한 개별문학들이 세계문학을 형성하는 생생한 생명체로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여는 순간, 독자는 그 안의 언어생명체가 우리의 기대 지평을 훌쩍 넘어서는 것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저아라비안 나이트의 천변만화가 여기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그 편린을 엿보게 해 준 지적 품격을 다시 확인하면서 페르시아권 문화의 보편 가치를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동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 사랑은 미래니까. 어느 철학자의 저서 제목처럼, “미래는 오래 지속되는것이니까. 다시 말해, 사랑은 목숨의 연장인 것이다. 그런데 저 어떤 상황은 신정사회의 절대 규범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서 율법은 바로 엄격한 규칙들의 그물로 작동하여, 주인공들의 사랑을 차단한다. 왜 율법과 사랑이 충돌하는가? 사랑은 무엇보다도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는 하나의 삼단논법을 완성할 수가 있을 것이다. 미래는 곧 자유라고.

여하튼 율법은 사랑을 필경 검열하고야 마는데, 검열은 항상 일방적이다. 그런데 사랑도 그에 질세라 일방적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절대성의 크기가 사랑에도 똑같이 가정되어야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 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 둘은 각각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교묘한 전략을 짜는데, 그로부터 사랑의 요설과 율법의 궤변이 치열히 달라짐의 레이스를 펼치게 된다. 두 세계가 부딪쳤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면서 화려한 언어의 검무를 추는 것이다. 그 검무는 검열과 사랑의 대결에서 시작되었지만 언어의 전 차원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글쓰는 상황과 사건의 상황이 겹쳐짐과 분리를 되풀이하고, 느낌과 인식이, 예감과 사태가 한 물결로 뒤섞이고, 비극이 희극을 낳고 희극이 비극된다. 격동의 마당 둘레엔 전 세계의 고전 작품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권투장의 관객처럼 함성을 지르고 법석을 떤다. 독자의 가슴엔 단파장의 전류가 줄곧 흐를 것이다. (쓴날: 2011.08.22 발표: 간행물 윤리위원회 좋은책 선정위원회 9월의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