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선재의 『그녀가 보인다』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김선재의 『그녀가 보인다』

비평쟁이 괴리 2011. 9. 13. 08:53

김선재는 젊은 소설가인 모양인데, 그녀가 보인다(문학과지성사, 2011)는 그의 개성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우선 그의 작품들은 의문을 의문으로서 끝까지 몰고 가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서투른 작가들은 독자의 궁금증을 자신의 조급증으로 옮겨 와 서둘러 답을 내놓거나 아니면 자신이 제기한 의문에 스스로 포박되어 도중에 길을 읽곤 하는데, 김선재는 그가 설치했으나 그가 풀어야 할 미로를 냉정하게 따라가 마침내 막바지에 이르러 해답 그 자체가 아니라 해답의 실마리를 쥐는 데까지 이른다. 그 막바지는 처음에 제기된 사소한 의문이 삶의 의미 전체로 확대되는 때이다. 다음, 그는 젊은 소설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환상을 거꾸로 사용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환상을 욕망의 저편에 놓아, 혹은 욕망의 저편에 놓인 것의 원인으로 놓아 좇아가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환상을 사물로 만들어 욕망을 정지시키고, 암종양처럼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증식만 하는 감정의 추한 덩어리를 직면케 하고 있다. 이 환상의 사물화는 정영문의 글쓰기와 닮은 점이 있는데, 그러나 정영문에게 의식의 사물성이 유폐된 자의식의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면, 김선재의 감정의 사물성은 사회적 존재의 차원에서, 즉 사회 속에 의미없이 감금된 존재의 문제로서 제기되고 있다. (2011.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