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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성복형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눈먼 자들의 도시』 얘기가 나와서 주문을 해 읽어 보았다. 가상적 재앙 상황을 다룬 소설로서 엄청난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밀도는 오로지 상황 그 자체에 절대적으로 집중한 데서 나왔다. 또한 그 집중 속에서 어떤 비약이나 환상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이 작품의 밀도를 그대로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작가들이 이 엄청난 집중력을 배웠으면 좋겠다. 굳이 흠을 들추자면, 두 가지 ‘그럴 듯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모두가 눈이 멀었는데 의사의 아내만 멀지 않았다는 설정 자체의 비개연성이다. 이 그럴 듯하지 못한 상황은, 불확정성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해명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불..
실천문학사에서 제정한 제 1회 노동문학상이 노동자 시인 박노해에게 주어졌다. 박노해는 얼굴이 없는 시인이다. 그의 시집 『노동의 새벽』(1984)에는 1956년 전남 출생, 15세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시와 경제』제 2집(1983)을 통해 시를 쓰기 시작한 이래 그는 한 번도 얼굴을 공개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의 시는 꾸준히 발표되었고, 노동운동의 현장에서는 그의 시가 뜨겁게 낭송되고 있다고 한다. 뿐인가. 지난 번 대통령 선거 때는 민중후보 백기완씨에게 출마를 결심하게 한 호소문을 보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노해의 등장은 80년대에 대폭 확산된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층 민중들의 문화적 자기 표현에 기폭제가 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자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