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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ogo)의 『눈먼 자들의 도시』 본문
성복형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눈먼 자들의 도시』 얘기가 나와서 주문을 해 읽어 보았다. 가상적 재앙 상황을 다룬 소설로서 엄청난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밀도는 오로지 상황 그 자체에 절대적으로 집중한 데서 나왔다. 또한 그 집중 속에서 어떤 비약이나 환상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이 작품의 밀도를 그대로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작가들이 이 엄청난 집중력을 배웠으면 좋겠다. 굳이 흠을 들추자면, 두 가지 ‘그럴 듯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모두가 눈이 멀었는데 의사의 아내만 멀지 않았다는 설정 자체의 비개연성이다. 이 그럴 듯하지 못한 상황은, 불확정성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해명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불확정성이 왜 주목되어야 하는 것일까? 오늘의 독자들은 어쩌면 논리적 이해보다는 상황의 현상적 격렬성을 더 즐기기 때문에 이 작품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비개연성은, 의사가 눈 멀쩡한 아내를 놔 두고 검은 색안경을 썼던 젊은 여인과 성관계를 가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작품 후반부에 다시 언급되면서 일종의 해명을 하고 있는데(누가? 의사가? 아니면 작가가?), 그러나 그것이 이 장면의 필연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200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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