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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작가' 지의 평론 등단작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성면씨는 등단 이후, 한국의 장르 문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진 전문가가 되었다. 그가 여전히 무명의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조성면의 「환멸의 시학, 환상의 정치학」은 판타지 소설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글이다. 판타지 소설은 90년대 이후 통신망의 자유 기고가들에 의해 급성장하여 10-20대 독서층의 지지를 업고 재래의 독서 공간까지도 광범위하게 잠식해 들어왔다. 그 질적 수준이 어떠하든 이 압도적 현상 자체가 비평가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것은 문학이 살아내야 할 환경 중의 하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판타지 소설인가? 왜 한국에서는 하필이면 판타지인가? S/F나 추리소설은 왜 안되고..
▶ 아래 글은 염무웅 선생의 「한 민족주의자의 정치적 선택과 문학적 귀결 -김광섭론」에 대한 질의로서 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이다. 토론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고, 쓴 날이 2005년 9월 26일이니, 발표일자는 그 언저리가 될 것이다.문학수업 시절 염무웅 선생님의 글은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 중의 하나였다. 신선한 자극과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제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토론을 하게 되었으니 지극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질문을 던지겠다. 첫째, 김광섭의 초기시에 대해서. 초기시에 대한 염무웅 선생님의 진단은 기존의 통념을 섬세한 시 분석을 통해서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선생님은 김광섭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고독」이 당시의 식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까닭을 밝히고는 이어..

나는 1979년 여름에 처음으로 문학과지성사를 방문하였다. 신춘문예에 입선할 걸 계기로 지면을 하나 얻었던 것이다. 원고를 들고 청진동 문학과지성사로 들어서니 김현 선생님이 기품 있어 보이는 아담한 분과 바둑을 두고 계셨고 그 옆에서 농투성이 아저씨 같은 분이 열심히 원고지를 메꾸고 계셨다. 나는 김병익 선생님은 단숨에 알아챘는데 저 촌 양반이 김치수 선생님인 줄은 몰랐다. 막 프랑스에서 돌아와 ‘문학사회학’을 한국에 소개하고 그 시각에서 한국문학을 해석하는 데 여념이 없는 김치수 선생님과의 첫 조우는 그렇게 상상과 외양 사이의 부조화에 대한 야릇한 느낌을 내 가슴에 한 줄 새기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와는 종류가 다른 기분 하나가 또한 내 눈을 따끔거리게 하였는데, 옆에서 친구들이 도락을 즐기고 있..
황지우의 『나는 너다』 복간본에 대한 해설을 쓰느라 두 달을 다 써버렸다.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나는 그가 1980년대 말에 무슨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 고민이 그가 당연히 맞닥뜨려야 할 정당한 고민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와 고민을 공유한 사람이 당시에 극히 희귀했었다는 건 80년대의 한계를 그대로 지시한다. 어쩌면 나조차도. 나는 1988년의 「민중문학론의 인식구조」에서 그와 동일한 화두를 띄웠으나 그 이후 정반대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하튼 황지우의 시에 대한 얘기는 해설에서 지겨울 정도로 썼으니 그걸로 그치련다. 그 해설을 쓰면서 나를 내내 사로잡았던 다른 생각은 우리 세대가 김현 선생의 영향을 얼마나 깊이 받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성 문화물의 해체·재구성..
※ 아래 글은 프랑스의 한국문학전문출판사 DeCrescenzo에서 발행하는 웹진, Keulmadang 2016년 봄호에 실린 글이다. Keulmadang의 주소는 https://keulmadang.com/이다.1. 한국 현대문학의 탄생과 계몽의 변증법 한국 현대문학은 오늘날 우리가 ‘모더니티’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는 서양 문물 혹은 서양적 존재양식의 유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 한반도에는 독자적인 언어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과 많은 점에서 달랐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모더니티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언어문화장champs des culture langagières은 곧바로 서양적인 방식으로 개편되게 되었다. 서양의 문학 개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