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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아마도 누구나 한번 쯤은 어느날 골목길을 무심히 지나다가 아스팔트를 비집고 풀이 돋아난 것을 보았을 때 문득 생명의 경이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동을 “얼랄라/저 여리고/부드러운 것이!”하는 즉각적인 언어로 직역해낼 줄 아는 사람은 소수의 언어마술사들 뿐이리라. 생각해보면 그런 탄성은 누구나 낼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지극히 상투적일 수도 있을 법한데, 그러나 시인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마음의 언어를 날 것 그대로 이끌어냄으로써 놀램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생명의 경이라는 게 저 드높은 곳에 살고 있는 어떤 백익조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아주 친숙한 것임을, 아니, 그렇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야만 생명의 경이로움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최석하의 『희귀식물 엄지호』(문학과지성사, 1996)는 첫 시 제목을 그대로 시집 제목으로 쓰고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엄지호씨는 평범한 공무원인데 “숱한 남의 자식 키워 장가보내는” 선행을 말없이 실천하며, 해마다 벚꽃 만개일을 수첩에 꼬박꼬박 적어두는, 요컨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이 엄지호씨에게 시인은 ‘희귀식물’이라는 별명을 단다. 헌데, 하필이면 왜 ‘식물’일까? 다시 말해 희귀 인종 엄지호, 천연기념물 엄지호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꼭 식물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있는가? 야릇하게도, 첫 시만을 빼고 다른 시들은 식물적이라기보다 차라리 동물적이다. 시인이 그리는 세상은 날이면 날마다 “전쟁 또는 파괴 그 자체”가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낚시꾼들이 무심코 내던지는 라면봉지들, 깡통들이 바다..

김종철의 『못의 귀향』(시학, 2009)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세계이다. 이야기는 대체로 옛날의 신산한 삶을 애틋이 회상하는 일을 한다. 그 점에서 이야기는 위로와 용서, 거둠과 정돈의 역할을 하는 것, 다시 말해 격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을 넉넉히 받아들이게 하는, 통풍 잘 되는 바구니 같은 것이다. 독특한 것은 그의 이야기가 은밀하게 두 이야기로 겹쳐져 있다는 것이다. ‘삶 이야기’와 ‘말 이야기.’ 그것은 그의 ‘삶 이야기’가 충분히 다스려지지 않는 데서 나온다. 즐겁게, 흔감히 추억하지만 뭔가가 못에 걸린 듯 떨어져 그 스스로 못이 되어 몸의 어느 구석을 슬그머니 찌른다. “못의 귀향”은 ‘못의 귀환’이다. 가령, 식구들이 “밤새 잘 발라 먹은 닭뼈”라든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그렇..
1.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정현종 시인은 신천옹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시인이 그러하지만 정현종 시인은 특히 그렇다. 그 증거는 그의 시에 있다. 그는 한국의 대부분의 시인들이 고통을 토설할 때에 행복을 노래하고, 그럴 권리를 거듭 주장하였다. 그것은 그가 낙원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정현종이 전하는 낙원의 기억은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 발설될 수가 없고 인간의 지능으로 해독되지 않는다. 그것을 전달하는 매질은 언어이되 언어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천상적 삶의 물질적 실물들로서 나타난 것들이다. 천상적 생의 형상이란 삶의 적나라하고 구체적인 실상으로부터 오는 실감을 담았으되 그것들을 담뿍 소화하여 맑게 정화하는 운동 그 자체로서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그것은 곧 가장 깊이 드나들면..
김광규의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문학과비평사, 1988)를 읽으면서 나는 김주연에 의해 명명된 후, 그의 시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범속한 트임’의 의미를 되묻는다. 널리 알려져 있듯, 시인이 그리는 세계는 이른바 소시민적 일상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는 한편으로 강압적이거나 혹은 은밀히 조직적인 권력의 억압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억압에 의해 알게 모르게 숨막히고 주눅들어서 왜소해질대로 왜소해진 사람들과 사물들이 있다. 시인은 그러한 삶에 맥없이 이끌려다니는 사람들의 상태를 전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하며, 쓰라린 결핍과 지저분한 잉여를 동시에 낳는가를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폭로와 비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일상인의 삶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