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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적인 세상을 반성케 하는 식물성의 시학 - 최석하의 『희귀식물 엄지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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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적인 세상을 반성케 하는 식물성의 시학 - 최석하의 『희귀식물 엄지호』

비평쟁이 괴리 2024. 1. 18. 09:51

최석하의 『희귀식물 엄지호』(문학과지성사, 1996)는 첫 시 제목을 그대로 시집 제목으로 쓰고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엄지호씨는 평범한 공무원인데 “숱한 남의 자식 키워 장가보내는” 선행을 말없이 실천하며, 해마다 벚꽃 만개일을 수첩에 꼬박꼬박 적어두는, 요컨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이 엄지호씨에게 시인은 ‘희귀식물’이라는 별명을 단다. 헌데, 하필이면 왜 ‘식물’일까? 다시 말해 희귀 인종 엄지호, 천연기념물 엄지호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꼭 식물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있는가?
야릇하게도, 첫 시만을 빼고 다른 시들은 식물적이라기보다 차라리 동물적이다. 시인이 그리는 세상은 날이면 날마다 “전쟁 또는 파괴 그 자체”가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낚시꾼들이 무심코 내던지는 라면봉지들, 깡통들이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만드는가 하면, 길거리는 “매연과 차소리, 인파들, 정치 구호들”로 시끄럽기 짝이 없고, 소매치기는 “다른 선량한 사람들한테/무수히 사기당하고/배신당하고, 얻어터지고, 실신당하고, 실연당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이 “살기등등”한 싸움 세상에서는 짓밟히는 자, 이른바 민초들도 동물적이 될 수밖에 없다. 같이 악을 써야만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래서, 시인은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를 “색안경 낀 사람들의 침입을/사생결단으로 막는 울부짖음들”로 듣는 것이고, 횟감으로 잡힌 도다리의 눈이 “이것마시고 직장암에나 걸려 뒈져라”는 표정으로 노려본다고 느낀다.
그런데 시인은 엄지호씨를 두고 “음지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민초를 빼닮았다”고 적는다. 살기 위해 아득바득거리는 사람들, 폐광 광부, 산재 노동자, 양아치, 창녀들과 엄지호씨가 한 부류임을 슬그머니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암시에 의해 불현듯 엄지호씨의 식물성은 야수같은, 야차같은 세상에 대한 투명한 거울로 기능을 한다. 한편으로는 들끓는 욕망들의 그악스러움을 비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아간지옥에서 더불어 악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비애를 비춘다. 그 비애는 “소주잔을 비우고 또 비우다가/웃음 마르고 소주병도 바닥나고/조금씩 남은 맥주병들 죄 바닥나고/바닷물 소리, 바람구멍 허한 내 가슴 뚫고/아침해가 불그레 돋는구나/젖어 있는 해/허허바다”같은 구절에서 보이듯이 허한 가슴의 비애인데, 그러나 그렇게 가슴을 텅 비울 때 아침 해 불그레 돋는 자리가 열린다. 그 때는 욕망과 비애가 연출하는 허망한 몸부림이 맑게 보일 때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허심탄회한 긍정, 삶에 대한 겸허한 수락이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엄지호씨의 식물성은 그러니 단지 거울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작은 햇덩어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표현의 중심은 ‘햇덩어리’에 있지 않고 ‘작은’에 있다. 작은 햇덩어리는 이글거리는 큰 해, 다시 말해, 펄펄 산 것들이 저마다 키우는 욕망의 무분별함을 반성케 하면서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식물성이란 스스로를 반성하고 제어할 줄 아는 동물성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