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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2000년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소감.지난 8일 팔봉 비평문학상이 저에게 주어졌다는 한국일보사의 사고(社告)와 함께 심사보고서, 심사평 그리고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저는 무척 겸연쩍었습니다. 줄곧 남의 글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을 때, 그것도 논쟁적인 시비가 아니라 과분한 평가를 들었을 때, 물건을 사러 시장에 들어간 사람이 장바구니에 담겨 나오는 듯한 황망함이 스쳐지나가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 쑥스러움을 이기기 위해 찬사를 받는다는 건 욕을 먹는다는 것보다도 더 괴롭다는 생각을 억지로 키우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 쑥스러움이 심한 부끄러움으로 변해 가는 것을 느꼈으며, 급기야는 북북 긁어대고 싶은 붉은 염증이 얼굴 전체를 뒤덮는 기분..
최종 심사대상작으로 선정된 평론집은, 김선학의 『문학의 빙하기』(까치), 김수이의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창비), 오생근의 『위기와 희망』(문학과지성사), 이숭원의 『시 속으로』(서정시학), 한기욱의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창비), 황현산의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이었다. 한기욱의 책을 제외하면, 시 평론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평론집들이었다. 소설 평론집의 상대적인 침체는 곧바로 한국 소설의 파행에 대한 의혹을 낳았다. 즉 한국소설의 실체와 수준을 궁금해 하는 세계의 눈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 소설은 문학 외적인 사건들을 통해 화제거리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시평론집의 활기는 문화의 변두리로 밀리며 독자로부터 외면..
비평은 무엇으로 사는가? 시대적 문제의 징후를 포착하고 그 가능성을 가늠하는 것? 또는 텍스트의 윤곽을 본뜨고 그 섬모들을 고르는 것? 그것도 아니면, 텍스트의 표면과 내부의 운동 사이의 차이를 측정하는 것인가? 사실은 모두일 것이다. 텍스트를 통과하지 않는 시대의 문제는 허황하기 일쑤고, 시대와의 어긋남을 고민하지 않는 텍스트는 시체와 다름없을 것이며, 모든 읽을 만한 텍스트는 세계의 문제를 제 몸의 상처로 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조강석의 『경험주의자의 사계』, 소영현의 『분열하는 감각들』, 김영찬의 『비평의 우울』을 최종 검토의 저울 위에 올려 놓았다. 『경험주의자의 사계』는 텍스트의 구체성에 몰입하는 가운데 세계의 창을 열어나가겠다는 비평가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분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