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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채영주의 『시간 속의 도적』(열음사, 1993)은 묘한 소설이다. 뒷골목 부랑아들의 기발한 인생 활극을 다루고 있는 그 작품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악동소설의 계열에 속하는데, 그러나, 주제가 너무 거창하고 심각해서, 악동 소설 특유의 재재바름을 민족주의적 주제의 무거움이, 마치 뚱보 마르고Margo가 비용François Villon을 깔아뭉개듯, 짓누르고 있다. 이 불협화적인 희비극의 접목 때문에 소설 읽기의 재미는 배반당한다. 배반당한다고 쓴 것은, 그것이 기대를 촉발시켜놓고는 전혀 기대를 채워줄 아량을 베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악동적인 것에 대한 몰입의 기대로 군침을 삼켰던 독자는 위장을 처지게 만드는 질긴 고기를 만나 불현듯 이빨의 저항을 느끼게 되고 소화불량에 대한 예감으로 신 침이 나오기..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자마자 종영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그것을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도시의 향기」는 영화 『바톤핑크』와 간-텍스트적 관계에 놓여 있다. 문화적 압제와 야생의 미친 폭력 사이에 끼여 파괴당하는 한 예술가의 영혼을 보여주고 있는 그 영화와 대비해, 소설에서 문화적 압제는 차가운 일상성으로 대치되어 배경으로 깔리면서 광기의 날 폭력에 무참하게 무너지는 예술가의 삶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소설은 영화와 섬세하게 차이지면서 영화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제기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광기의 날 폭력은 차가운 일상성과 어긋나 있는 게 아니라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옆방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그 기괴한 연결이 내지르는 소음이다. 아니, 광기는 일상과 연결되..

오랜만에 새로운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젊은 작가들의 세계가 조금씩 분명해지고 있다. 문학이 끊임없이 신인들을 배출하는 것은, 산아제한의 시대에도 신생아가 매일 태어나는 것과 같은, 생리현상일 뿐이다. 문학사를 통틀어, 젊은 문학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더욱이 문학과 생활의 담이 허물어진 이후, 젊은 문학의 차지는 괄목하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80년대의 질풍노도 이후 문득 적막해진 문학의 터전은 이제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위에 퍼진 방황과 모색의 체조들로 새까만 듯 보였다. 이제, 그 원형질 운동의 덩어리들이 서서히 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정찬․김영현․이승우가 그렇고, 이순원․하창수․박상우, 그리고 채영주가 그렇다. 헌데, 젊은 작가들의 글에서 훨씬 더 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