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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지하가 해월과 증산에게서 전거를 끌어내며 ‘생명사상’을 제기했을 때, 그것은 순간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촉발시켰다가, 비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는 이론가들의 비판과 함게 차츰 그 광도를 잃어왔다. 하지만 논의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도중에도 그것은 문학적 실천의 장에 은근하고 깊숙이 스며들어간 모양이다. 많은 작가·시인들이 의식적으로 ‘생명’을 화두로 삼는 경우를 여러번 목격할 수 있다. 이시영의 세 번째 시집 『길은 멀다 친구여』(실천문학사, 1994)의 시편들을 붙들어 매고 있는 주제 단위도 생명이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김지하의 생명과 다르며, 혹은 60년대의 생명주의 문학(박상륭·이세방)의 생명과도 다르다. 그 다름은 그것이 죽음과 맺고 있는 특이한 관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김지하의 생명이 죽..
한 눈빛 어머니 병원 가시고 난 지 일주일 창 밖 후박나무 가지 위에 웬 이름 모를 멧새 하나 찾아와 종일을 앉았다가 날아가곤, 앉았다가 날아가곤 한다 어머니 아예 먼길 뜨시려고 저러는 걸까 새는 날아가고 날아간 새의 초점 없는 희미한 눈빛만이 가지 끝에 앉아 밤새도록 흔들거리며 나를 굽어보고 있다 (이시영 시집, 『사이』, 창작과비평사, 1996) 어머니가 입원하신 것과 창 밖에 새 날아온 것이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인간의 사건과 자연의 광경을 정면으로 맞대놓고 시침 떼는 것은 후반기 이시영 시의 아주 특징적인 면모이다. 그 두 세상 사이의 관계를 눈치 채기 힘들어서 독자는 종종 어리둥절해지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때로 내밀히 조응하는 연결이 숨어 있어서 복잡한 심사를 귀신처럼 드러낸다. 새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