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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바람부는 거리엔 길이 없다. 바람은 거리 안에서 불지 않는다. 바람은 거리를 통째로 몰고 다닌다. 바람은 거리의 항우다. 바람은, 때문에, 언제나 세계의 이동을 동반한다. 바람이 많은 시인들을 자극한 까닭은 그것이 세계 전체의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의 현상학은 시인마다 다르다. 정현종에게 있어서 바람은 생의 에로티즘을 불지피우며, 황동규에게 바람은 인식의 청량제다. 이성복의 바람은 미끄럽고 유하의 바람은 끈적거린다. 방금 또 하나 바람의 아들인 시집이 태어났다. 성윤석의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문학과지성사, 1995)가 그것이다. 그 동네에 부는 바람은 황막스럽다. 그 바람은 서부극의 바람이고 사하라의 바람이다. 바람의 양태는 시인이 세상을 종말 이후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 아래 글은 『포에트리 슬램』 제 8호 (2021.06)에 발표한 글이다. 잡지가 나온지 시간이 꽤 경과했다고 판단하여, 블로그에 싣는다. 1. 옛 시인들이 된 이들의 시집 옛 친구들로부터 두 권의 시집이 도착했다. 이윤학의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간드레)과 주창윤의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라이더』(한국문연)이다. 나는 이 시인들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주창윤 시인은 만난 적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문학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저 혹독한 시 가뭄의 시대, 즉 1990년대의 시베리아를 우리는 시를 끌어안고 통과했다. 우리의 고투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 같다. 기나긴 20여 년의 적막 끝에 2010년대 후반부에서부터 시가 다시 되살아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