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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작품]깃털을 싣고 달리는 기차지정애기차가 기차로 출발할 때 비의 밧줄에서 풀려난 커다란 동물은 사바나인 듯 휙휙 기차에서 솟아나는 아침으로 비는 아이들의 입과 눈을 커다랗게 만든다 푸르고 눈부시게 섞이는 비의 허리와 아이들의 다리 실로폰이 되고 뛰는 나무가 된다 기차의 엔진은 지평선을 뚫고 밤의 내장에 갇혀 있던 욕망 차창 밖으로 날아간다 한 아름 드라이플라워로 기차가 기차의 좌석이 되는 동안 구름으로 구름의 입모양을 만든다 고양이의 잠처럼 고요하고 낮은 침묵의 의자 공중의 울대에서 우렁찬 노래 흐를 때 금요일의 맥주 거품은 내일의 태양 어제의 입술이 되고 거리를 배회하는 영혼은 해안선에 젖으며 꿈을 더듬는다 기차가 기차의 끝에 이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슬픔은 다른 이름을 갖게 된..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2회 2021년 6월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우리 집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에 “아직도 고3수험생처럼 사느냐”고 핀잔을 맞곤 하는 사람이 있다. 워낙 바탕에 갖춘 게 없어서, 열심히라도 하지 않으면 뭔가 늘 부족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불안해지니 쉼없이 몸을 놀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무언가 끊임없이 만들어내긴 하는데, 그 중 대부분은 쓸모가 없어서 방치되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버려진다. 그가 그렇게 사는 건, 그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 뜬금없이 사생활의 못생긴 조각을 들추어낸 건, 구병모의 소설을 읽다가 뭔가 유사한 점을 발..
윤혜준 교수의 『바로크와 '나'의 탄생 - 햄릿과 친구들 』(문학동네, 2013)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윤교수의 드넓은 교양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바로크와 나를 연결시키는 그 아이디어가 계발적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윤교수와 주고 받은 서신의 내용이다. 윤혜준 교수님, 보내주신 책, > 잘 받았습니다. 바로크 시기에 '나'의 탄생을 보신 것은 매우 흥미로운 착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나'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분열'이 있어야 했다는 점에 착목한다면 윤교수의 관점은 매우 시사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나'의 탄생을 '근대'라는 '존재양식'의 태동과 연결시키는 편인데, 그 근대는 시기적으로는 아주 다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산업혁명기일 수도 있고 르네쌍스기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