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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문학과지성사 김영하에게서 많은 사람들이 신세대적 감수성과 그 감수성을 글로 옮기는 재능을 칭찬하고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성실성을 사고 싶다. 그렇다는 것은, 재기발랄한 말솜씨와 화려한 이미지로 독자의 눈길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그의 소설들이 실은 치밀한 배경 조사와 적절한 정황 구성, 말의 정확한 쓰임을 위한 작가의 오랜 준비와 노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적지 않은 비평가들에게 당혹감과 실망을 야기한 「비상구」야말로 조사와 준비가 완벽하게 작품의 형상 속에 녹아서 그 흔적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작이며, 오히려, 돋보이는 주제의식 때문에 비평가들의 입에 회자된 「흡혈귀」가 쉽게 씌어진 작품임을 느낄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2회 2021년 6월 독회의 심사의견으로 제출된 것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 전반적인 인상 1. 소설의 생존이라는 문제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소설의 생존의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형세이다. ‘이야기’와 ‘문채’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인간사의 대용품들의 공장으로서 출현했던 소설은 19-20세기에 누렸던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잃고 매체와 유통 구조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 제작체’의 번성에 실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이 신종으로 출현한 이야기 생산물들은 본래 소설이 누린 영향력을 좇으면서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신체를 가다듬고 있는 중이라서 언제 이 소설이 저 소설이 될지 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