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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집 읽기

새로운 시인 이지아의 『오트 쿠튀르』

비평쟁이 괴리 2020. 4. 17. 14:08

이지아의 『오트 쿠튀르』(문학과지성사, 2020)는 놀라운 두께를 감추고 있는 시집이다. 그가 감추고 있는 것은 그의 과거이자 현재인 생인데, 그는 그것들을 즉각적인 은유로 감춘다. 즉각적이라는 것은 그의 은유가 통상적인 제유중복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휠라이트Wheelwright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는데, 은유의 두 가지 종류[치환은유 vs 병치은유]에 대한 구별은 쓸데 없는 것이다. 그 차이는 단지 유사성의 거리로 인한 착시일 뿐이다), 매 순간 매 장소의 근처에 놓이거나 혹은 심리적으로 그러한 환유적인 것의 기능변환을 통해서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래서 그의 시는 해독이 쉽지가 않다(해설을 쓴 조재룡은 날카롭게도 그걸 ‘트랜스로직’이라는 용어로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비유의 기능적 변환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의 은유는 생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작동한다는 것. 그래서 그 은유는 발화되는 순간 한편으로 그의 생을 은폐하

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생을 통째로 움직여 다른 것으로 변형시킨다. 그것은 지시하지 않고 꿈틀거리게 한다. 말할수록 대상은 말의 바깥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는 것이다. 게다가 변형의 스펙트럼이 넓다. 아니 차라리 입체적이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언어는 자신의 생을 부인하지도 은폐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조롱하는 듯한데, 그 조롱은 타인들의 조롱을 시늉하며 거꾸로 받아쳐 이죽거리면서 자기 생에서 모독의 때들을 닦아내는 기묘한 뒤집기를 동반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의 언어가 그의 생을 야멸차게 공격할수록 그의 삶을 더욱 품위있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시집 제목은 그래서 꽤 적절한 듯이 보이는데, 그 안에도 아이러니와 위트, 그리고 패러독스가 보인다.)
가까워질수록 넓어지고, 냉랭할수록 타오르는 작용. 그 덕분에 발화된 언어와 그것이 암시하는 삶 사이에는 아주 다층의 생각과 다면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들이 뭉게뭉게 일어난다. 말이 나아감에 따라 그 세계(들)는 더욱 두터워진다. 
그 점 때문에 그의 시는 처음에 해독을 방해하는 단단한 소음들의 무쇠덩어리인 듯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방향으로 뚫고 들어가도 아주 상큼한 해석의 구슬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석류와도 같다. 저 1950년대에 괴로운 심사를 숨기기 위해 쓰이던 정경은유(김춘수의 시가 그렇다는 것을 밝혀낸 이는 김현선생이다)가 이제 이토록 먼 데까지 왔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시집의 두께는 언어와 오로지 그의 삶 사이에서만 형성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 생은 날 것 그대로의 생이고 또한 저수준의 늪지대 같은 삶이다. 이 정도의 시적 기교를 구사할 것 같으면 축적하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문학적 지식 혹은 교양의 부피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시인이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건 그가 그의 생과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는 얘기가 된다. 그는 어쩌면 “정글숲을 지나서 가”면 나타나는 “늪지대”의 “악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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