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함기석의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본문

울림의 글/시집 읽기

함기석의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비평쟁이 괴리 2020. 4. 17. 05:09

우리는 독특하면서도 어딘가 날렵한 기운이 있는 걸 두고서 유니크하다라는 표현을 흔히 쓰곤 하는데, 함기석의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민음사, 2020)는 그런 수식에 썩 어울리는 시집이다. 그의 시들 주변에 일렁이는 기운은 매우 한가한 사색이다. 그는 책들과 주변과 풍경들과 상상들을 무심하게 오고 가면서 거기서 눈에 띄는 단어와 문장들을, 새가 모이를 줍듯, 콕콕 찝어서 글의 캔버스로 옮겨 놓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체로 알곡들을 거르듯 단어들을 간종그리고 이곳저곳에 배치하면서 그 효과를 본다.

놀라운 것은 그 결과이다. 그가 마침내 완성하는 글의 고치에서는 삶에 대한 유니크한 통찰들이 마치 껍질들이 잘게 부서지면서 벌들이 날아오르듯 대기로 퍼진다. 그리고 그 통찰들 자체라기보다, 그것들에 대한 감각적 느낌들이 독자의 눈을 간지럽힌다.

 

너의 눈동자 속

 

그곳은 태초의 암흑이자 최후의 설원

 

모든 시간들이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광야

 

()과 백()

 

두 개의 탄환이 무한을 날고 있다 (포텐셜 에너지 언어)

 

언어가 시로 창조되는 순간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굳이 한자를 넣어 놓은 ()’()’은 글자와 공백의 쉼없는 변환을 압축적으로 표징한다(부수를 떼고 읽으면 은 말()이고 은 공백이다.) 하지만 이 시들이 그냥 가벼웁기만 한 게 아니다. 그 배경에는 생사를 일시에 관통당한 새가 / 철철 피를 흘리며 나는 고통스러운 글 두드림의 과정이 개재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애초에 보았던 한가한 사색은 매우 처절한 두통을 감추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고통스러움을 날렵함으로 감싼다는 점에서 그는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이다.